2024 성탄 2강 "임마누엘" (마 1장) - 이어거스틴
2024.12.15 18:08
2024년 성탄 2강 (이어거스틴)
임마누엘
말씀/마태복음1:1-25
요절/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은혜가 이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과 링크를 통해 함께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충만히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나라가 매우 혼탁하고 시끄럽지만 우리를 진리와 정의로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 예수님을 우리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세리였던 마태가 전하는 성탄 메시지입니다. 저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임마누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될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1장 예수님의 계보(1~17)
저자 마태는 그 복음서의 기록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출생하시기까지의 과정을 계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계보는 다른 말로 족보라고도 말하는데요, 저도 아버지를 통해서 엄청 두꺼운 족보책자를 받기도 했고, 또 명절 때 본가에 가면 아버지께서 족보책자를 즐겨 꺼내놓으십니다. 사실 저는 족보에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는데, 추측컨데 아마 조선개국 초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씨 가문의 계보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실 저희 가문의 조상되시는 분도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것이고 그분은 아마 고려 사람었었겠죠~. 그렇게 해서 조상의 조상을 계속 따라서 올라 가다보면 결국 그 끝에는 누가 있을까요? 예 여러분들도 잘아시다시피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사람 아담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과연 나의 최초 조상은 누구인지를 궁금해하면서도 창세기에 기록된 사실은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시간을 빌어서 제 아버지를 비롯하여 모든 분들이 우리모두가 아담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믿을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자마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때부터 예수님까지의 계보를 기록함으로써, 창세기에 여자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2절~5절까지를 형제,자매순으로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보통 족보를 보면 조상들 중에 높은 벼슬을 했다든지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마태가 기록한 이 계보를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할수있습니다. 2절까지에서는 여느 족보와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그런데 3절이후부터 그 족보 내용에 이방 여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5절까지 세 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요 ‘유다는 다말에게서,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는 룻에게서’ 라고 기록함으로 굳이 넣지 않아도 될 부분을 첨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당시 사회적, 종교적 통념상 여성들이나 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 등을 넣는다는 것은 상당한 파격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기 족보에 등장한 세 여인들의 면면을 살펴보게 되면 파격을 넘어 충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다말은 가나안 출신의 이방여인이었는데요, 그녀는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음으로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라합이 나오는데 그녀는 이방인 여리고민족출신이었고 당시 창녀였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녀가 그리스도의 계보상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입니다. 또한 룻은 모압인 출신이었는데요, 모압은 아브라함 조카롯의 딸이 후손을 얻기위해 그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생긴 자녀입니다.
저자 마태는 이왕 여성을 족보에 넣을거라면 사라나 리브가처럼 성경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소위 정상적인 여성들을 기록하면 좋았을텐데, 오히려 부도덕한 경력을 지녔거나 율법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이방여인들을 의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가 어떤 곳이며, 하나님구속역사에 쓰시는 사람들이 어떤자들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자인 마태자신도 과거 공인된 죄인취급을 받았던 세리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자신의 민족들에게 혈세를 받아챙김으로 동족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였기에 그가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제자로 구속사역에 부르심 받았을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뭔가 업적을 남겼거나 아니면 인간적으로 자격조건이 되어서 받은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처럼 자신이 깨닫고 체험한 신앙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시간 나의 모든 죄악과 허물과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긍휼하심과 은혜로 말미암아 구속하시고 주님역사에 동참케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저자는 계보에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왕이 그리스도 계보에서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인물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이후 그 계보를 보면 다윗 왕가의 족보로 채워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왕을 언급하면서 그냥 솔로몬을 낳았다라고만 기록하면 왕가의 족보로서 체면이 설텐데, 저자는 거기에 굳이 살을 붙여서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륜을 암시하는 기록입니다. 이런 기록은 마치 의도적인 폭로에 해당할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 마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것일까요?
결국 그리스도의 계보는 훌륭한 의인들의 계보가 아니라 죄인들의 계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는 불륜의 죄를 범했고 무엇보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야를 고의적으로 최전방에 서게함으로 살인죄까지도 저질렀습니다. 다윗의 죄악은 한마디로 파렴치한 범죄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인간적으로 훌륭해서 그 계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허물과 죄악에 거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이지만 오직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저희 목자님들이나 성경말씀을 잘알고있는 우리들은 이부분에서 오해를 하지않지만 링크를 통해서 들으시는분 또는 아직 신앙이 없는 분들이 오해할까봐 부연설명을 잠깐 드리겠습니다.
조금전에 등장했던 이방여인들이나 또 방금 설명드렸던 다윗의 죄악된 모습의 기록들이 좀 충격적으로 들렸을텐데요, 저자가 이 죄악상들을 폭로하듯 밝히고자한 것은 죄를 지어서 은혜로운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악된 실상과 연약함을 강조코자 기록한 것입니다. 즉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그의 서신서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수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6:1~19)
사도바울도 이렇게 분명하게 그리스도안에 거듭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밝히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저자가 밝힌 이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는 죄에 연약한 자신을 깊이 인정하고 때마다 예수님앞으로 나아갈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7절~11절을 보십시오. 형제,자매순으로 읽겠습니다.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갈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본문의 기록은 왕이라는 호칭은 생략되었지만 모두가 다 왕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왕가는 그 아들 솔로몬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됩니다. 결국 요시야왕을 끝으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었고 포로로 끌려감으로써 다윗왕국은 이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로써 다윗의 후손을 통해 그 나라와 그의 왕위를 견고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가 어렵게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왕국은 무너졌지만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계속 지켜지고 있음을 다음 기록을 통해 볼수가 있습니다.
다같이 12절~16절까지 말씀 형제,자매순으로 읽겠습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웃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것처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자들이 70년만에 돌아오게하시고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성전을 재건케하셨습니다. 이후 말라기선지자를 끝으로 약400년간 침묵하시다가 비로소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을 통해 보내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성취가 되었습니다.
본문 마리아에게서 라는 이 표현은 메시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올 것이라는 원시복음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또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17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때까지 열네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대더라”
저자는 마지막으로 계보를 정리하면서 두번의 전환점을 중심으로 14대로 나뉘어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윗왕국이 무너지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건은 이스라엘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후에도 계보가 끊기지않고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취소되거나 정지가 된 것이 아님을 저자는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시는 이 계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 인간은 실패와 오점투성이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배우게됩니다. 우리 인간은 죄로인해서 부패하고 망할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요 또 역사속에서 사라져 갈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시기위해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죄악된 인류의 역사의 열매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도 기적과도 같은 일임을 깨닫게됩니다. 이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난것보다도, 원전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오염된 땅에서 다시 추수하게된것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요 기적이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이시간 오점과 실패와 허물로 가득찬 인간의 역사속에서도 변함없이 개입하시고 함께하시며 구원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저는 계보상에 나타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해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팍팍한 현실의삶을 하루하루 살아가야하는 입장에서 맘가운데 큰소망과 용기를 덧입게되었습니다. 올해초 기적 같은 한가지 사건이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시간동안 관계성이 끊어진상태로 집을 나가 살던 딸 루시가 올해1월을 기점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예배를 회복하는, 사실 꿈만 같은 일이 현실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동안 어그러져있었던 아빠의 관계성도 극적으로 회복이 되면서 그동안 앙금처럼 남아있던 감정의 골들이 순식간에 눈녹듯 사라짐으로 부녀간의 사랑의 관계성이 온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청년때에 닉네임이 돌아온탕자 돌탕이였는데 마치 돌탕시즌2를 보는것 같아 매우 기쁘고 부모로서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더나아가 자부심 또한 생겨나게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바울이 휴가날짜에 맞춰서 네가족이 함께 신혼여행이후로 25년만에, 결혼25주년기념 제주도 가족여행을 다녀옴으로 귀중한 시간을 함께보낼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루시가 2024년도 여름수양회까지 참여해서 오락프로그램도 맡아서하고 짧지만 대표소감도 발표함으로 저는 이대로만 쭉~나간다면 내년쯤에는 청년팀에 리더로도 활약할것 같은 기대감과 소망까지도 덧입게되었습니다. 그런데 딱~여기까지였습니다.
9월에 접어들어서면서 준비하던 피부관리사시험에 떨어지고 예배를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다시금 집을 나가는 상황이 발생되었습니다. 저는 봄과함께 찾아왔던 기적이 가을과 함께 다시금 과거 제자리로 돌아간것같아 맘이 씁쓸하고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봤지만 결국 사람은 쉽게 변하지않는다는 보편적 생각으로 결론을 낼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역자와 저는 맘이 아프지만 또다시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주실때까지 기다림의 시간들을 다시금 보내야함을 받아들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변화될것같지않는 딸아이의 상황과 또다시 장기화될것 같은 조짐등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있지만 맘깊은 곳에서는 이러다 믿음의 계보가 끊어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한계적인 생각가운데 지낼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때에 느닷없이 이번 성탄2강말씀을 준비토록 하심으로 주시는 말씀을 통해 큰위로와 힘을 덧입게하셨습니다. 특별히 인간적으로 아무런 소망이 없어보이는 계보가운데서도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를 완벽하게 성취하셨음을 생각할 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진정한 하나님의 섭리요 계획임을 깨닫게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죄인이 연약하여 때마다 하나님께 독촉하듯이 빠른시일내에 돌이킬수있도록 기도하는 자신의 조급한마음을 회개케하시고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바라보게하셨습니다. 제가 앞으로 자녀의 허물을 바라보기보다도 부모로서 자녀를 지지해주고 격려함으로 어떤가운데 있든지 계속해서사랑의 관계성을 온전히 회복해나갈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시간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제 2장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1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저자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록한 이후 이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나심을 따로 떼어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창세기에서 7일간 창조사역을 기록한 이후 인간의 창조를 따로 떼어서 자세히 기술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합니다. 저자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 즉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하기위해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과는 다른방식으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결혼관습은 결혼하기전 1년동안 정혼기간 즉 약혼의 기간을 갖습니다. 이 정혼기간동안 동거는 하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이처럼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두사람이 동거하기전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써 여자의 후손이면서 법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되신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정혼한 요셉의 입장에서볼때는 참으로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은 법적으로는 마리아의 남편이었지만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들었을때 당연히 그녀가 간음죄를 범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로인해서 큰 충격과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아마 좀 다혈질인 저나 요셉목자님같았더라면 가만있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본문에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한 것을 볼 때, 그가 인간적인 배신감가운데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음을 알수있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임신소식으로 인해서 고통스러웠지만 당시의 율법으로 돌팔매질당할 마리이를 보호하기위해서 드러내지않고 가만히 끊코자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계획가운데 그날밤 마리아에 대한 생각으로 고뇌하느라 잠을 제대로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리아 마리아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오~마리아~” 그는 이렇게 마리아를 부르다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꿈에서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나타났습니다.
다같이 20,2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자는 성령으로 된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리아로인해 고뇌에 빠졌던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직접 나타나 놀라운 메시야탄생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누가복음1장27~31절에서 보면 마리아도 주의 천사를 통해 이 놀라운 소식을 이미 전해들었음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추측컨데 아마 마리아가 먼저 이 소식을 직접 들었으므로 가장 먼저 사랑하는 요셉에게 말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마리아 얘기만 듣고서 쉽게 수긍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요셉에게도 친히 보내심으로 메시야의 탄생소식을 직접 듣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주의사자가 전해준 이 놀라운 소식에 마리아처럼 성령의 잉태소식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마리아를 오해한 것에 대한 미안함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되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를 통해 낳을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짓도록 들었을 때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랜기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도 없었고 말씀이 희귀한 때에 직접 주의 천사를 통해 주신 이 놀라운 메시야 탄생 소식은 요셉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자”입니다. 여기서 자기백성은 누구를 말할까요?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민족이라고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 마태는 계보를 통해서 이방인들까지 포함하여 혈통이 아닌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리나 창녀들처럼 율법을 지키지않는 사람들은 언약백성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의 예를 통해 또 다말의 예를 통해 또 룻의 예를 통해서 그들 역시 믿음으로 언약백성이 될수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후 민족, 혈통, 신분에 관계없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만 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선택된 백성들만의 종교가 아니라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모든 자들에게 임한 큰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22절~23절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모든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본문의 이 말씀은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임마누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약속은 남유다의 아하스 왕이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침략으로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시며 약속의 말씀을 친히 이루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마리아를 통해 죄로부터 구원할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어 주심으로 임마누엘의 약속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3인칭 복수로서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될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3년동안 함께 동거동락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과정을 지켜본 로마의 백부장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은혜는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 마태에게도 강력하게 임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친구가 되어주지않았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았고 본인 또한 내가 왜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할지 삶의 방향을 전혀 알수가 없어 고통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세관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심각한 고뇌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먼저 그에게 다가오셔서 “Follow me~” 부르심으로 그와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함께 하심의 은혜가 얼마나 감격적이고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에 포함되어 끝까지 충성스럽게 주의 사역을 감당하였고 산상수훈등과 같은 예수님의 아름다운 말씀을 그 복음서에 기록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요 메시야로 영접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임마누엘의 은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강력하게 임함으로 지금 이시간에도 구주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한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시간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죄인을 단에 세우시고 성탄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것 자체도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이시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소위 인생의 한주기를 60년이라고 얘기하는데, 이제 곧 다가올 2025년도가 되면 저도 어느새 인생의 한주기를 돌게되는 60갑자 환갑을 맞이하게됩니다. 잘 실감은 나지않지만, 제가 앞으로 남은 인생의 주기를 한바퀴를 다돌지 반바퀴만 돌지 아니 반의반바퀴만 돌지 알수는 없지만 나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안에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나갈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시간 저와 여러분이 보름 남짓 남은 2024년도를 임마누엘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한해로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2025년도를 소망가운데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요절말씀 읽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