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성탄 3강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마 2:1-12) - 윤모세
2024.12.27 20:23
2024년 성탄 3강 (윤모세)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말씀/ 마태복음 2:1-12
요절/ 마태복음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이 땅에 구주 예수님을 보내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의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하신 언약을 이루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내용입니다. 어린아이들도 잘 아는 동화와 같이 유명한 사건입니다. 영국의 C. S. Lewis는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해지면 동화를 즐길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순수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생각해 보는 가운데 동방박사들같이 큰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
1절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때는 헤롯 왕이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는 BC 40년에 로마 황제 아구스도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어 BC 4년까지 약 36년간 다스렸습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왕권을 위협하는 것 같이 보이는 자는 가차 없이 처단하였습니다. 첫 아내가 낳은 두 아들과 둘째 아내와 그녀가 낳은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장 후반부를 보면, 그는 베들레헴 지경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남자아이들을 다 학살합니다. 참으로 잔인한 통치자였습니다. 이런 통치자 밑에 있던 백성들은 많은 괴로움을 당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멸시하는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이방 왕의 불의한 통치를 받고 있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곧 구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이런 시대 가운데 드디어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사 베들레헴에 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구주가 나신 것을 알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동방은 고대 페르시아 지역을 말합니다. 일찍이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었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장차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이 편만하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동방의 여러 민족들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민수기 24:17절 말씀 등으로 인해, 유대인의 왕이 나실 때 하늘에 특별한 별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당대의 현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박사'로 번역된 '마고이'(영어로 Magi)라는 말은 당시에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가진 제사장을 의미했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지혜로운 자보다 더 탁월한 다니엘을 지칭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단 5:7, 11) 그들은 왕을 보좌하는 자들이요, 별을 관찰하며 미래를 연구한 그 시대의 미래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느날 밤하늘을 관찰하다가 한 놀라운 별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신비한 별이었습니다. "아! 이 별은 바로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의 별이 분명해! 여호와 하나님이 드디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주셨어! 그리스도가 나신 것이 틀림없어!" ”어디, 나도 망원경을 좀 봅시다! 어, 정말이네, 이 별은 그리스도의 별이 틀림없어! 자,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메시아를 경배하러 갑시다!”
그런데 메시아가 나신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메시아에게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고대 시대에 자기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고향을 떠나는 순간 신변 보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산과 길, 숲속에는 강도와 도적이 들끓었습니다. 강의 위협, 맹수의 위협이 도사렸습니다. 사막을 지날 때는 낮의 뜨거운 태양과 밤의 추위를 견뎌야 되었습니다. 그들이 적어도 1,500Km 나 되는 사막과 광야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황금과 유향, 몰약 같은 보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박사들은 이미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부족함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들의 여행은 적어도 수 개월 걸렸을 것입니다. 나중에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다 죽인 것을 볼 때, 1년 정도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구도자의 자세를 배웁니다. 그들은 인생의 안일함과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확행을 추구하는 현대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어찌하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했습니다. 자기들의 가장 중요한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를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 자기들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참으로 지혜로운 현자들이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구도자의 자세를 배우길 기도합니다. 가장 귀한 것을 찾는 사람이 그것을 얻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히 가치가 있는 그리스도를 얻고 소유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박사들은 위험하고도 오랜 여행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기에 당연히 수도 예루살렘의 왕궁에서 계실 것으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 지금 예루살렘 왕궁에는 헤롯 왕이 버젓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찾아온 사람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입니다. 진정한 왕으로 나신 그리스도를 찾아온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은 그 하신 약속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신실하지 못하나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를 위해 그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둘째,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
예루살렘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통해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절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여기서 소동했다는 것은 'disturbed' 인데 '당황하여 소란하다', '허둥대다'라는 뜻입니다. 헤롯은 자기 왕권이 위험해졌다고 생각하여 그랬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사람들은 머리로는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였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정치적 혼돈과 생존의 불안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소동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말로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바로 오늘 이 예배가 끝나자마자 오신다면 어떨까요? "아, 지금 안 오셔도 되는데요. 조금 더 나중에 오시면 좋겠네요"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도둑같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셔도 두 팔 벌려 영접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깨어 있는 삶은 잠도 자지 말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일상으로 삼아 성실하게 감당해 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머리가 좋은 헤롯은 즉시 대책을 준비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묻습니다. 헤롯 왕 자신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의 어용 종교지도자들은 즉시 대답합니다. 5,6 절입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메시아 탄생 약 700년 전에 기록된 미가서 5:2절의 인용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탄생 장소가 특정되어 있습니다.
오시리라 예언된 그리스도는 다스리는 분, 곧 왕이십니다. 또한 목자, 곧 섬기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자 왕(A shepherd king)이십니다. 목자 왕 예수님은 헤롯 왕과 얼마나 다릅니까!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잘 아십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십니다. 세상 왕은 군림합니다. 무력으로 임의로 다스립니다. 그런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한 왕, 섬기는 왕, 자기 목숨을 주기까지 그 백성을 사랑하시는 왕이십니다. 이 목자 왕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가 목자 왕 되신 예수님을 심령에 날마다 영접하여 다스림 받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도 예수님을 잘 배워서 섬기는 목자,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주는 작은 목자들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머리로는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은 많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은 성경이 가리키는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곳,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그에게 고하여, 그도 가서 아기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사악한 왕인지요!
셋째,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9절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박사들은 헤롯이 가르쳐준 대로 베들레헴으로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게 웬일입니까!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별은 네비게이션처럼 앞서서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베들레헴의 한 곳에 이르러 별이 멈췄습니다. 그 집을 향하여 밝은 빛을 내리비추었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드디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은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기쁨이 어떠합니까?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내용을 강조할 때 우리와 같이 부사를 사용합니다. '매우', '크게' 기뻐했다 등입니다. 그런데 더욱 강조할 때는 동일한 말을 반복합니다. 10절을 보면 부사를 두 번 쓰고 (매우, 크게) 여기에 더하여 “기뻐하고“를 반복합니다. 가장 원문대로 직역한 NAS 번역에는 “They rejoiced exceedingly with great joy“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이 강조된 표현은 아마 다른 곳에는 없을 것입니다. 박사들의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그 이상으로 맛볼 수 없는 하늘의 기쁨, 솟구치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메시아를 만난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의 현자들이었습니다. 왕들과 제국과 역사를 통찰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가는 것을 보며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찰나와 같은 인생을 살고 나서 그 이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생의 근본 문제임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솔로몬이 말했듯이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분요한 가운데 그림자와 같이 살다 갑니다. 인생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일지라도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날아갑니다. 이는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팩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러한 것을 알 때 우리는 더욱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되고 알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구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합니다. 관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세상은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우리 각자가 정말 고민해야될 점은 세상의 사람들, 세상의 것들이 아닙니다. 살과 같이 빨리 지나가는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을 다 살고 난 후, 나의 그 다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대한 인생 문제인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상의 그 무엇도 참된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바로 그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는 앞장 마태복음 1:21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교육을 받고 자라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가운데 인간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이로 인해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얻게 하고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로 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차를 사면 1달이 기쁘고, 집을 사면 1년이 기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일생이 기쁩니다. 영원히 기쁩니다.
많은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난 그 놀라운 사건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동방박사들과 같은 기쁨을 누립니다. 크리스천은 착한 삶, 계명을 지키는 삶을 통해 이러한 기쁨을 얻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그 기쁨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탄은 바로 우리에게 이러한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 땅에 나신 날입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새롭게 온 마음으로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고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사 다시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넷째,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은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마치고 잠시 쉬기 위해 머물렀던 집일 것입니다. 결코 좋은 집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박사들은 당초에 유대인의 왕이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왕궁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찾은 유대인의 왕은 그런 왕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작은 집에 계셨습니다. 그들은 ‘이런 집에 있는 아기가 유대인의 왕이라니…’ 생각하면서 실망하고 돌아가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아기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사들은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아기 얼굴을 한 번 보고 ”참 귀여운 아기구나“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감히 아기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동방의 예법대로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였습니다. 최고의 예의를 표하며 경배하였습니다. 이 순간은 그들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베들레헴까지 오느라 고생한 모든 수고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심지어 천사들까지도 보기 원했던 메시아이십니다. 아기로 오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 아기는 자기의 인생을 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주신 바 된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분입니다. 부활하사 그 믿는 자들에게 의와 생명을 주실 분이십니다. 이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증거요, 이 땅에 나타난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박사들은 그 아기 앞에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습니다. 그 아기를 자기들의 그리스도요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의 심령에 하늘의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이제 영원한 생명이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들의 모든 인생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박사들은 땅에 엎드렸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저자 마태는 1장에서 이방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넣었습니다. 2장에서는 아기 예수님을 처음으로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 이방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신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통해 참된 예배가 어떠한 것인가를 또한 배웁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계신 곳에서 그 분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엎드리는 게 참된 예배요 최고의 예배입니다. 사람은 피조물로서 누구나 참 경배 대상인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 마음에 쉼이 없나이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참 경배 대상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새 남편과 사는 것으로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영혼은 더욱 목말랐습니다. 이런 그녀가 예수님을 참된 경배의 대상으로 발견했을 때, 그녀의 심령 깊은 곳에서 그동안 맛보지 못한 최상의 기쁨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기쁨은 그녀의 모든 외로움과 사람에 대한 불신을 다 없애주었습니다. 내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녀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쁨을 원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별로 기쁠 일이 없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요즘 혼란한 정치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습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결하고자 유튜브에 의존하고, 술과 쾌락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그 근본 문제는 인간 조건이나 주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참된 경배의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기쁨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나 경배할 때 누구나 최상의 기쁨,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박사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나서 가지고 온 보배합을 엽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에게 예물로 드립니다. 변하지 않는 황금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왕, 영원 불변의 왕이심을 알고 엎드려 황금을 드렸습니다. 유향은 아라비아의 특산물로 이것을 태우면 그윽한 향기가 나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유향을 드린 것은 아기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대제사장이심을 말해줍니다. 몰약은 부패를 방지하는 향품입니다. 요한복음 19장을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을 가지고 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 중에 몰약은 가장 신비스럽습니다. 누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시신에 바르는 몰약을 준단 말입니까? 이는 그들이 아기 예수님이 장차 그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분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2절입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박사들은 순수하고 단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헤롯에게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다른 길로 동방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아기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과 함께 인증샷을 하지 않았습니다. 방명록에 싸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사실 몇 명이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비로운 사람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드리기만 하였지 받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먼 길을 돌아가느라 수고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얻은 자들로 행복과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인생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들로 기쁘고 복된 생애를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탄절은 성자 하나님이 아기로 오신 날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 주시는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문제, 곧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부터 영원까지 우리로 누리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 예수님께 엎드려 온 마음으로 경배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가운데도 하늘의 기쁨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