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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로마서 13강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말씀/ 로마서 12장 

요절/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지금까지 로마서 1-11장은 복음의 이론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15장은 복음의 실천편에 해당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새한글번역을 보겠습니다: “1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대어 여러분에게 권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제물로,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거룩한 희생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드릴 참된 예배입니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삶을 예배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삶이 곧 예배다.” 참 멋있는 말입니다. “나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소서.” 참 멋있죠. 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삶이 예배가 되는지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다음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삶이 예배가 될 수 있는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새한글 번역을 보겠습니다: “2이 세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지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곧 무엇이 선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고 완전한 것인지를 검증하여 밝혀내십시오.” 

 

삶이 예배가 되기 위해서 “이 세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요?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지십시오.” 성경에 “확”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새롭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좌파와 우파, 시니어 세대와 젊은 세대, 또 동과 서로 나뉘어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건전하고 발전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죠. 문제는 좌파, 우파, 시니어 세대, 젊은 세대 동과 서 - 어느 한쪽에 속하여 상대방의 주장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더 나아가 상대방의 주장을 온갖 억지와 악한 말로 매도하고 일방적인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이 세대의 특징이고 문제입니다. 

 

제가 어제 생명의 말씀사 방문을 위해서 잠간 광화문을 갔는데 한쪽에서는 태극기를 휘두르며 극우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극좌파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서로간에 극한 갈등과 대립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 크리스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진정한 크리스챤은 이른바 진영 논리를 버려야 합니다. 진영논리가 무엇인지 잘 아시겠지만 잠간 설명드리겠습니다: 

 

"진영논리(/Partisanship)는 특정 인물집단사물사건 등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그 기준이 - 그 대상이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가 -를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떤 사람이 굉장히 좋은 말을 했어요. 그런데 그 말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저 말을 좌파가 했는가, 우파가 했는가, 동쪽 진영 출신의 경상도 출신 사람이 말했는가, 전라도 출신의 사람이 말했는가, 젊은 세대가 말했는가, 시니어 세대가 말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사회적 보편타당한 가치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판단하는 주체가 '자신과 같은 진영'에 속해 있으면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다.” 

 

김대중 선생님이 말씀하셨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말이 너무나 훌륭한 말로 여깁니다. 반면 어떤 분이 말했다 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기가 싫고 “꼴도 보기 싫으니 TV 꺼라”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가 '다른 진영'에 속해 있으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진영논리 문제가 쉽게 발생한다. 이 경우는 이러한 진영논리를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진영논리를 펼칠 때 스스로 좀 부끄럽잖아요. 자기가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 “확증편향”입니다. 확증편향이 뭐냐면, 기존의 내 신념이나 기치관과 일치하는 정보만 잘 듣고 뭔가 거기에 안맞는 것 같으면 처음부터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확증편항입니다. 또 이중잣대 -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러한 논리적 오류의 근거를 동원하여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어느 진영에 속해 있지 않은 제3자가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크리스챤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내가 속한 세대, 내 출신 지역, 또 나의 개인적 이익 - 이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만약 이것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면 이 세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한 목자님이 자신이 돕던 학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대학생이었을 때는 극좌파였습니다. 늘 논리정연한 말로 좌파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이분이 졸업하면서 헤어졌다가 상당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 식사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분이 극우파로 변신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까 이분이 무슨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좌파 정권의 세금 정책으로 극우로 돌아선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개인적인 사업 때문에 지지 정당을 바꾸었다.” 이렇게 정직하게 말하면 아무 문제가 안되는데 그런 말은 빼놓고 이념적 사상적으로 좌파가 얼마나 잘못되었고 우파가 옳은지 열변을 토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참된 크리스챤이라면 절대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내 형편과 이익에 따라서 지지하는 정당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직하게 그렇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업을 하기 때문에 나는 우파를 지지한다 - 이렇게 정직하게 말을 해야지 무슨 다른 논리를 갖다 대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크리스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한번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이 세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지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곧 무엇이 선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고 완전한 것인지를 검증하여 밝혀내십시오.” 

 

참된 크리스챤은 이 세대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질 수 있습니까? 

 

제가 요즘 청년들이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왜 못할까 생각해보니까,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달라지면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이 안 좋아합니다. 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해야 좋아합니다. 그래야 You’re one of us. - 하면서 친구로 받아들입니다. 같이 술도 마시고 놀러도 가고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성경을 읽더니 생각을 확 새롭게 해서 -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 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싫어해요. 밀어내 버립니다. 그리고 단톡방을 만들어 뒤에서 욕을 합니다. 잘난척 한다고 재수없다고 욕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박해합니다. 이런 박해가 두려워요. 그러므로 생각을 확 새롭게 하려다가 다시 확 뒤집어 친구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자, 그냥 나를 맞추자 -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크리스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친구들이 나에게 강요하는 이 생각이 과연 성경에 맞는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검증해서 밝혀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검증해서 밝혀내는 것이 박사쯤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성경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쉬운 새한글성경 나왔으니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면 TV가 나에게 심는 생각, 친구들이 나에게 강요하는 생각이 뭔가 성경과 안맞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구나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새한글성경입니다: “3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힘입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정도를 벗어나 분수에 넘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마다에게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믿음을 기준 삼아 슬기롭게 생각하십시오. 4우리 몸은 하나이지만 몸에는 각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몸의 각 부분들은 모두 똑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5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는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에게 속한 각 부분들입니다. 6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따라 우리가 받은 은혜의 선물들이 서로 다릅니다. 예언하는 은혜를 받았으면 믿음에 걸맞게 해야 합니다. 7또는 섬기는 은혜를 받았으면 섬겨야 합니다. 또는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쳐야 합니다. 8또는 권면하는 사람은 권면해야 합니다. 나눠 주는 사람은 딴맘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지도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신이 나서 해야 합니다.”

 

3-8절 말씀은 한 마디로 스타가 되려고 하지 말고 팀웍 정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스타가 되려고 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야구의 경우 홈런을 치면 엄청난 관중의 환호와 언론의 스포트라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야구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서면 어떻게든 홈런을 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홈런이라는 것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통계적으로 100경기하면, 보통 한 경기에 타자가 4번 정도 타석에 들어서는데 100경기하면 400번 정도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중에 20개 정도 홈런치면 훌륭한 홈런 타자입니다. 30개 치면 굉장한 홈런타자입니다. 그런데 400번 기회에 20개 정도 홈런 칠 수 있는데, 한 경기에 4번 기회에서 홈런을 칠 가능성이 높겠습니까, 낮겠습니까? 웬만하면 홈런 못칩니다. 결국 4번 홈런을 노리고 나오는데, 4번 다 홈런을 못치고 헛스윙하여 삼진 아웃을 당했습니다. 문제는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홈런을 치려고 홈런 스윙을 합니다. 그러면 그 팀은 이길까요, 질까요? 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 스포츠 팬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롯데가 그랬습니다. 1번부터 9번까지 이대호 선수를 비롯해 멤버가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성적은 늘 꼴등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롯데가 아니라, 꼴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팀은 팀웍이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1번은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투수의 공이 좀 컨트롤이 안되어 들어오면 엉덩이를 내밀어 공에 맞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합니다. 2번은 어떻게든, 번트를 대든 해서 기회를 이어주려 하고, 3번은 어떻게든 작은 안타라도 쳐서 기회에 불을 붙이려 하고, 4번은 어떻게든 점수를 내려하고, 5번은 4번이 만약 실패하면 자기라도 어떻게든 하려하고, 6-9번은 타격은 잘 못하지만 대신 수비연습을 완벽하게 해서 내가 안타는 못치더라도 최소한 에러는 하지 말자, 상대방의 안타를 막아내는 좋은 수비를 하자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죽을 힘을 다해 수비연습을 합니다. SK가 그런 팀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 팀의 성적이 탁월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를 가보면 멤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별로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겸손합니다. 그런데 그 멤버들이 모여서 굉장이 팀웍이 잘 됩니다. 각자 재능을 살려서 서로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고 팀웍을 살려서 하는데, 숫적인 성장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반면 어떤 교회는 설교자가 탁월합니다. 이렇게 작은 교회에 있을 분이 아닌 것 같은데 할 정도로 설교를 잘 합니다. 또 교회 멤버를 보면 세상에서 알아주는 뛰어난 인재가 있습니다. 또 사람을 잘 설득하고 돕는 은사를 가진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분들을 다 모아놓으니까 난리가 아닙니다. 축구 시합에서 공격수가 골을 못 넣으면 서로 비난하는 선수들처럼 서로 비난하면서 난리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재능은 뛰어난데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지 않는 그러한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바울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스타가 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몸된 이 교회를 내가 어떻게 하면 섬길 수 있을까 -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어떻게 하면 홈런을 칠 수 있을까, 내가 스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팀이 진다고 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어떻게 하면 내가 스타가 될 수 있을까,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을까 그러한 생각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내가 섬길 수 있을까 그러한 측면에서 생각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그러한 교회 구성원이 되라는 것입니다. 

 

9-13절을 보십시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새한글성경입니다: “9사랑은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악한 것을 혐오하고, 선한 것을 꽉 붙잡으십시오. 10형제자매의 사랑으로 서로 아껴 주고, 서로 존중하는 일에 앞장서십시오. 11열정이 식지 않게 하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12희망 가운데 기뻐하며, 큰 어려움 가운데 견디십시오. 기도에 정성을 쏟으십시오. 13성도들이 어려울 때 함께 도와주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써 추구하십시오.” 

 

9-13절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12절 “희망 가운데 기뻐하며 큰 어려움 가운데 견디십시오. 기도에 정성을 쏟으십시오.”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특히 청년팀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몇 차례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때 승리하는 인생이 되지만 그러한 어려움 앞에 꺽이고 좌절하면 실패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큰 어려움을 이겨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지 못할 때 결국은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크리스챤으로서 기도에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위기의 때에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위기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위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해도 그 위기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때에는 기도에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그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14-21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새한글성경입니다: “14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을 빌어 주십시오. 복을 빌어 주시고, 악담은 하지 마십시오. 15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16서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주제넘은 생각을 버리고, 낮은 처지의 사람들과 기꺼이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보기에 훌륭한 일에 마음을 쓰십시오. 18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9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앙갚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의 벌하심에 자리를 내드리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으니까요. “앙갚음은 나의 일! 내가 되갚아 줄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20오히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면 그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목말라하면 그에게 마실 것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불타는 숯을 그의 머리 위에 쌓아 놓는 것이니까.” 21악에게 정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정복하십시오.” 

 

14-21절은 한 마디로 “악에게 정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과거 학생들 사이에 유명한 강사 중 정승재 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수학을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분이 강의 중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학문제 풀 때 꼭짓점의 좌표를 구하시오 - 문제를 풀 때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 있습니까? 좌표를 못 구하도록 펜을 툭 치고 말 걸고, 열심히 푸니까 뒤통수 때리고 그런 사람 있습니까? 또 잘 풀었다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 있습니까? 없어요. 오히려 선생님이 잘 했다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박수 쳐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서 뭔가 하려고 해 보십시오. 방해하는 사람이 온 천지에 깔렸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성공하고 좀 잘나간다 그러면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주위에 바글바글할 것입니다. 그러한 시기, 질투, 모함, 방해를 다 뚫고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공부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최근에 이 분이 과거 했던 발언이 정말 맞는 말이다 - 인정을 받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백요셉 목자님은 건설공사 현장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처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차로 사고를 냈습니다. 그 사고에 공사현장이 책임이 있다며 민원을 냈습니다. 나중에 현장을 찍은 CCTV를 확인해보니 그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 강남 주민인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으로 인해 백요셉 목자님이 흰 머리가 늘 정도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이런 곳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날마다 있습니다. 얼마전 한 여자 기상 캐스터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잘 나갔습니다. 그것을 시기한 선배 및 동료 기상 캐스터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악담을 하고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넷플릭스에 방영되었던 더 글로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회생활하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여러분,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전갈이 가득한 광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들이 안나가려고 해요. 최대한 휴학하고 어떻게든 안가려고 해요. 전갈이 가득한 광야에 나가는 것이 두렵거든요. 안나가려고 해요. 그러나 언제까지 안나갈 수는 없죠. 나가야죠. 자, 그러면 광야에 나가는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19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앙갚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의 벌하심에 자리를 내드리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적혀 있으니까요. “앙갚음은 나의 일! 내가 되갚아 줄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특히 우리 크리스챤 청년이 광야에 가서 이 악한 전갈의 독에 쏘일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갈을 발로 확 밟어버리고 싶죠. 그리고 “너만 독이 있는 줄 아느냐? 나도 독이 있다” 하면서 미리 준비한 더 강력한 독을 확 뿌려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 한국 사람은 운전대만 잡으면 - 그 젊잖고 한번도 욕설을 하지 않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가 됩니다. 그래서 운전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운전자가 갑자기 추월하더니 차문을 열고 욕설을 하기 시작합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설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 운전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옆에 있던 아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 남편이 저런 욕을 할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창의적인 욕으로 갚아줍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욕을 할 때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충격을 받으십니다. 성령님께서 이 사람이 경건하고 욕이라고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악독한 욕을 하는 것을 보며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쇼크를 받으십니다. 욕을 욕으로 갚아주면 문제는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근심하시고 힘들어하십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을 떠날 수도 없고 굉장히 고민을 하십니다. 결과적으로 욕을 하는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악을 악으로, 독을 독으로 갚아주는 내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 전갈같은 독에 맞았을 때 그 악을 행하는 사람을, 그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이 조금도 남김없이 그대로 다 갚아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면 굳이 내가 같이 욕하고, 같이 악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어떤 악행을 당했을 때, 잘 생각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법과 제도 - 경찰이나 사법제도, 직장의 경우 직장 괴롭힘을 호소하는 등의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해석할 때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쳐서 일체 그런 것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이 갚아주실 때까지 참아라 이렇게 가르치는데 그것은 편중된, 잘못된 해석입니다. 어려분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최대한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때도 있어요. 우리가 회사에서 조금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때마다 민원을 넣으면 회사생활 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피해를 보았다고 경찰에 신고하면 그 동네에서 살기 어려워요. 이웃집 아줌마가 조금만 나에게 음식물 쓰레기 문제 등으로 손해를 끼쳤다고 민원넣고 경찰에 신고하면 공동체 생활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4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을 빌어 주십시오. 복을 빌어 주시고, 악담은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주부들 경우 집 앞의 음식물 쓰레기 통이 항상 청결하기 원하잖아요. 집 앞이 늘 청결하게 유지되기 원하죠. 하루는 너무 속이 상해서 빌라 앞의 공동 청소구역을 내가 깨끗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누군가가 시커먼 비닐 봉지에 음식물을 넣어 버려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그런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 주십시오. 악담을 하지 마십시오. -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20절을 보십시오. “20오히려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면 그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목말라하면 그에게 마실 것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불타는 숯을 그의 머리 위에 쌓아 놓는 것이니까.””

 

이 말씀은 원수가 배고파할 때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원수가 목말라 할 때 그에게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해서 마치 숯불을 머리에 쌓아둔 것처럼 머리가 뜨끈뜨끈해져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도와주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것만 해도 용한데 그 사람이 잘 되도록 복을 빌어주라는 말씀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으며,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고전 명화 ‘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제가 커피 쿠폰 드릴 테니까 꼭 보시기 바랍니다. 3시간이 넘는 영화여서 인내심이 필요하긴 한데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를 보면 영화 주인공 벤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멧살라는 절친이 있었습니다. 그는 귀족 집안 자녀였습니다. 나중에 멧살라가 총독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 친한 친구가 벤허를 배신합니다. 결국 벤허는 노예가 되어 전함의 노를 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전투중 전함이 침몰하고 이로 인해 벤허는 죽을 위기에 처한 로마군 사령관의 목숨을 구해주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사령관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이후 벤허는 원수 멧살라와 함께 전차 경주에 참가하게 됩니다. 비열한 멧살라는 전차 바퀴에 불법 장치를 장착하여 벤허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꾀에 넘어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멧살라는 벤허에게 그의 모친과 누이가 지하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지하감옥에 가보니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나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멧살라의 죽음으로 어떻게 보면 벤허는 복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복수를 했음에도 그의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분은 그가 과거 노예가 되어 끌려갈 때 그에게 물을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실 때, 그때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데 그 빗물에 예수님의 피가 대지에 스며들고, 그의 마음에 스며들 때 놀랍게도 그는 그의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원수를 용서했을 때 마음에 놀라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수십년간 체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평화가 찾아오고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의 모친과 누이의 나병이 나음을 받습니다. 제가 내용을 스포했는데 직접 보면 굉장한 감동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작품은 굉장한 클래식 대작인데, 한번 내 마음에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이 들어오면 원수를 갚아도 그 악을 행한 사람을 밟아서, 내 모든 복수를 해도 그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 영화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더 글로리 드라마에 나오잖아요, 드라마니까 비현실적으로 시멘트 반죽에 넣어서 복수를 합니다. 본인이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시멘트 반죽에 넣어 굳어버리도록 하고 온갖 복수를 다 했지만 주인공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수를 다 한 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고 합니다. 마음에 전혀 평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내가 멧살라에게 복수를 해도 그 잃어버린 나의 젊음과 청춘은 누가 보상해 주겠습니까? 아무리 복수를 해도 내 마음의 미움과 분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내 마음의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진정으로 잘 되도록 기도해주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십자가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 뜨거운 용서의 피, 사랑의 피가 내 마음에 뚝뚝 떨어질 때, 그때에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잊어버리고 있지만 내 마음 한켠에 내 마음 구석에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 미움과 분노와 복수심은 여러분의 인생을 망칠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그 미움과 분노를 내 몸 밖으로, 내 마음 밖으로, 내 영혼 밖으로 - 독이니까 - 빼내야 하는데, 빼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서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뜨거운 보혈의 피만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용서로 악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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