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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출애굽기 6강 

 

 

흑암 재앙 

 

 

말씀/ 출애굽기 9,10장

요절/ 출애굽기 10:22,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다음 주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성탄절만큼, 어떤 점에서 성탄절보다 더 중요한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은 내용상 부활절 1강으로 할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있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쿠바섬 해변의 오두막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었습니다. 노인은 너덕너덕 꿰맨 돛을 단 작은 어선으로 멕시코만까지 출어했지만 고기를 못 잡은 지 벌써 84일이나 되었습니다. 85일째 되던 날 노인은 엄청난 대어를 낚았습니다. 3일간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노인은 길이 5.5미터, 무게 700kg이나 되는 청새치였습니다. 노인은 운수대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청새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배 곁에 밧줄로 묶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피냄새를 맡은 상어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노인은 다시 상어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노인은 최초의 상어를 격퇴하지만 이어 두 마리, 세 마리로 늘고 밤이 되자 아예 떼거지로 몰려옵니다. 노인은 닥치는대로 손에 잡히는 것을 무기로 상어떼와 싸웁니다. 하지만 상어가 달려들 때마다 고기는 뭉텅이로 뜯겨나가고, 상어를 죽여도 고기 살은 점점 사라져 갑니다. 배가 해안으로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은 앙상한 뼈뿐이었습니다. 더더군다나 상어와 싸우는 과정에서 노, 작살, 끝에 칼을 묶은 곤붕 등 어부 장비마저 전부 잃어버렸습니다. 

 

헤밍웨이의 이 소설은 삶의 현장에서 죽을 힘을 다해 투쟁하지만, 남은 것은 결국 앙상한 뼈뿐인 우리 삶의 모습을 너무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노인처럼 우리도 수많은 상실의 아픔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고 참된 소망을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9:1-7절을 보십시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서 말해 주거라. ‘여호와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2폐하가 내보내기를 마다하고 여전히 그들을 붙잡아 두신다고 합시다. 3그러면 들판에 있는 폐하의 집짐승을 여호와께서 손으로 치셔서,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무서운 돌림병이 생길 것입니다. 4그렇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집짐승과 이집트의 집짐승 사이에 차이를 두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짐승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5여호와께서 때를 정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여호와가 이 땅에서 이런 일을 일으킬 것이다.」’” 6이튿날부터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일으키셨다. 이집트의 집짐승은 모조리 죽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짐승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7파라오가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의 집짐승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런데도 파라오가 마음을 닫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지 않았다.

 

1-7절은 이른바 가축재앙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주된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농사짓는데 가축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가축은 농사짓는 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산이자, 가족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도 섬마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던 집에 들어가면 입구에 한쪽에는 소가 여물을 먹고있고 다른 한쪽에는 돼지가 있습니다. 돼지는 잡식성이고 특히 사람의 인분도 먹기 때문에 돼지가 있는 곳에는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또 마당에는 닭이 꼬꼬댁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오랜만에 오면 손주 왔다고 기뻐하시면서 마당에 있던 닭을 잡아 삼계탕을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농사짓는 사람에게 가축은 소중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가축과 어느 정도 가족과 같은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농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농부는 소와 함께 하루 열심히 농사를 지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짐을 소에게 지우지 않고 본인이 낑낑대며 직접 메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누가 물어보니까 우리 소가 하루 종일 농사일하느라 고생했는데 퇴근할 때만은 좀 쉬라고 내가 짐을 메고 온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반려견을 키우는 반려인들이 경험하는 펫로스(Petloss) 증후군이란 것이 있습니다. 펫로스 증후군이란 보통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반려 동물이 먼저 죽은 후 반려인들이 큰 상실감과 고통, 슬픔을  매우 오랜기간 겪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 반려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캐우던 개의 이름은 ‘또또’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처럼 사랑으로 함께 하던 또또가 - 반려견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처럼 귀가 안좋아 “또또야” 크게 이름을 불러야 “응” 겨우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소리로 ‘또또야 이리와’ 했는데 전혀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으르렁 거리며 경계하며 만지려고 하면 물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니 치매가 온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또또가 세상을 떠난 후 말로만 듣던 펫로스 증후군이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가족과도 같은 가축을 잃는 것은 큰 상실의 아픔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는 완악한 파라오에게 그의 백성이 이러한 상실의 아픔과 고통을 겪도록 하셨습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녹임가마의 그을음을 너희 양손에 가득 쥐어라. 그것을 모세가 파라오의 눈앞에서 공중으로 뿌리도록 해라. 9그러면 그것이 이집트 온 땅 위에서 먼지가 될 것이다. 그 먼지가 이집트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에게 달라붙어 부풀어 오르는 부스럼이 될 것이다.” 10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녹임가마의 그을음을 쥔 채로 파라오 앞에 나섰다. 모세가 그을음을 공중으로 던지자, 그것이 사람과 짐승에게 달라붙어 부풀어 오르는 부스럼이 되었다. 11그리하여 마술사들도 부스럼 때문에 모세 앞에 나설 수 없었다. 마술사들을 비롯하여 이집트 사람 모두에게 부스럼이 생겼다. 12그러나 여호와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닫아 버리셔서,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였다.

 

하나님은 녹임가마의 그을음이 사람과 동물의 몸에 붙어 부풀어오르는 부스럼이 되게 하셨습니다. 개역개정에는 악성종기로 번역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때 왕들 중에는 이러한 악성종기로 죽는 왕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건강할 때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올해에는 시간을 내어 꼭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습니다. 유명한 맛집에도 가보고 싶고 할부로 멋진 차를 사서 드라이브도 해보고 싶습니다. 또 바라는 것도 많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고 이것도 잘 되고 저것도 잘 되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건강을 잃으면 소원은 딱 한가지로 정리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그의 완악함으로 인해 백성들이 건강을 잃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마술사들도 부스럼이 생겨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모세와 아론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3-17절을 보십시오. 1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파라오 앞에 자리 잡고 그에게 말하거라. ‘여호와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14이번에는 내가 너의 마음에, 또 너의 신하들과 백성에게 온갖 재앙이 닥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온 땅에 나와 같은 신이 없다는 것을 네가 알 것이다. 15지금 내가 내 손을 펼쳐 너와 너의 백성에게 돌림병이 돌게 했더라면, 너는 땅에서 뿌리 뽑히고 말았을 것이다. 16그렇지만 너를 그대로 둔 까닭이 있다. 내 능력을 네게 보여 주어, 내 이름을 온 땅에 널리 알리려 했기 때문이다. 17그런데 너는 아직도 내 백성에게 건방지게 굴면서 그들을 내보내 주지 않고 있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와 너의 백성을 돌림병으로 당장 없앴을 수 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너를 살려둔 까닭이 무엇인줄 아느냐? 그것은 너를 통해 내 능력을 온 땅에 알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17절에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그런데 너는 아직도 내 백성에게 건방지게 굴면서 그들을 내보내 주지 않고 있구나.” 새한글 성경의 “건방지게 군다”는 표현은 ESV 성경에서 “You’re still exalting yourself(너는 여전히 너 스스로를 높이고 있구나.)”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백성이라고 얕보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의 신도 얕보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지금까지 6번의 재앙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노예 백성의 신이라고 얕보고 무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18-21절을 보십시오. 18보라, 내가 내일 이맘때에 우박이 아주 무섭게 쏟아지게 할 것이다. 이집트가 처음 세워진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본 적이 없는 우박일 것이다. 19그러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어, 너의 집짐승과 들판에 있는 모든 것, 곧 들판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조리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게 하여라. 집에 모아 두지 않으면, 우박이 쏟아져 그것들이 맞아 죽을 것이다.」’” 20그러자 파라오의 신하들 가운데서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한 사람은 자기 종들과 집짐승을 집 안으로 피하게 했다. 21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던 사람은 자기 종들과 집짐승을 들판에 그대로 두었다.

 

이런 파라오에게 하나님은 우박 재앙을 예고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재앙으로부터 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들판에 있는 사람과 짐승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고 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파라오의 신하들 중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들판에 있던 종들과 집짐승을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종들과 집짐승을 들판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손을 하늘로 내밀어라. 그러면 우박이 이집트 온 땅에 쏟아질 것이다. 이집트 온 땅에 있는 사람과 짐승, 들판의 모든 식물 위에 쏟아질 것이다.” 23모세가 자신의 지팡이를 하늘로 내밀자,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함께 우박이 내리게 하셨다. 또한 불이 땅으로 떨어졌다. 여호와께서 이집트 땅 위에 우박을 비처럼 쏟아지게 하셨다. 24우박이 쏟아질 때, 우박의 한가운데 불이 이리저리 번쩍였다. 우박은 아주 무섭게 쏟아졌다. 이집트라는 나라가 세워진 때로부터 이집트 온 땅에 그런 적이 없었다. 25이집트 온 땅에서 들판에 있는 것이 모조리 우박에 얻어맞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들판의 식물이든 모조리 우박에 얻어맞았다. 들판의 나무도 모조리 우박에 얻어맞아 부러졌다. 26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쏟아지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의 머리통만한 거대한 우박이 하늘에서 스커드 미사일처럼 쏟아졌습니다. 맹렬히 떨어지는 우박이 서로 충돌하여 우박 사이에 불이 생겼습니다. 우박은 이집트 땅의 들판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강타했습니다. 모든 나무가 다 부러지고 짐승이든 사람이든 들판에 있는 것들은 머리통에 우박을 맞아 그대로 즉사했습니다. 이집트가 세워진 이래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이 있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우박 재앙을 당한 파라오는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박을 그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29모세가 파라오에게 말했다. “제가 이 도시에서 나가서 여호와께로 손바닥을 펴고 빌면, 큰 소리가 그치고 우박도 더는 쏟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폐하께서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 땅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사실을요! 30그러나 폐하와 폐하의 신하들은, 제가 알기로, 아직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담대한 말입니까! 파라오 앞에서, 당대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 모세는 말했습니다: “이 땅이 여호와의 것입니다. 또 제가 알기로는 폐하와 폐하의 신하들은 아직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십니다.” 이 말은 직장 상사, 그것도 직속 상사 말고 고위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혹은 대학원의 지도교수가 담당학생에게나 할법한 말입니다. 만약 가난한 나라의 특사가 푸틴이나 트럼프에게 “미국이 원래부터 당신 것인줄 아셨습니까? 내가 볼 때 당신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 이렇게 말한다면 돌아간 다음에 스커드 미사일을 그 나라에 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세는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소심했습니다. 할 말도 못하고 형 아론을 시켜서 대신 말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말할 뿐만 아니라, 담대하게 하나님의 특사로서 파라오를 야단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29절에 무엇이라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폐하께서 알게 되실 것입니다. 무엇을요? - 이 땅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사실을요!” 

 

매우 진부한 표현(cliche)이긴 하지만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건물주는 그 건물의 주인임과 동시에 그 건물이 서 있는 땅의 주인입니다. 이것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같습니다. 공산국가는 공산당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공산당의 권력의 기반, 이 권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토지 소유권에 있습니다. 공산지역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건물을 산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곳은 돈을 주고 국가로부터 50년간, 100년간 그 땅과 건물의 사용권을 빌리는 것입니다. 임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50년 사용 가능한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쓰다보면 세면기나 변기 등이 고장이 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내 소유라면 내 돈을 들여 내 소유물을 고친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임대 아파트인 경우 고장나면 내 비용을 들여 토지공사 소유물을 원래대로 원상복구시켜준다는 개념입니다. 그게 그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본다면 소유 개념보다 임대 개념이 더 맞습니다. 사실 원래 공산주의가 성경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정설입니다. 

 

본문의 파라오는 어떻게 보면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이집트의 왕이니까, 이집트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 안에 있는 땅도, 물도, 하늘도, 그 안에 있는 짐승도, 사람도 다 내것이다 - 내가 명령하면 내 명령을 따라야 하는, 나의 지휘아래 있는 나의 소유물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모세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이번 경우는 착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하는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그가 비록 이집트의 파라오이고, 왕이지만 이집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진짜 소유주는 누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임대해주신 것입니다.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현 왕조가 몇 백년 지속되고 이후 멸망합니다. 그 몇 백년 기간 동안 하나님이 임대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한반도도 왕씨에게 몇 백년 임대해주셨다가 이씨에게 몇 백년 임대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 땅에 약 400년 살게 하셨는데, 이제 그 기간이 끝났으니까, 임대 기간이 끝났으니까 내 백성을 이제 내보내라는 것입니다.

 

파라오가 이것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파라오는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의 소유권 뿐만 아니라, 이집트 하늘의 소유권도 갖게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우박이 그치는 것입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31삼의 줄기와 보리가 우박에 얻어맞았다. 보리에는 이삭이 패었고, 삼의 줄기에서는 꽃봉오리가 맺혔기 때문이었다. 32그러나 밀과 고지대 밀은 우박에 얻어맞지 않았다. 이삭이 늦게 패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삼의 줄기와 보리가 우박에 얻어맞았으나 밀과 고지대 밀은 보존되었다고 언급합니다. 저자가 갑자기 왜 이 내용을 언급할까요? 그것은 파라오에게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밀을 주식으로 했기 때문에 우박 재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고 살 수 있는 최후 수단이 남아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은근히 이것을 믿었습니다. 

 

33-35절을 보면 우박 재앙이 멈추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파라오는 다시 자신의 말을 번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면 고집을 쉽게 꺾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파라오를 어떻게 하십니까? 

 

10장은 메뚜기 재앙입니다. 모세는 믿는 구석이 있는 파라오에게 메뚜끼 떼가 몰려와 파라오가 믿는 밀과 고지대 밀, 더 나아가 모든 푸른 풀을 싹 다 먹워치울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때 파라오의 신하들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언제까지 우리에게 덫이 되게 내버려두시렵니까? 그 사람들을 내보내어 자신들의 신 여호와를 예배하게 해 주십시오. 이집트가 망한 줄 폐하께서는 아직도 모르십니까? - 이 미련하신 전하!” 

 

아마 “미련하신” 이란 부분은 들릴락말락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흔히 자기 고집과 아집은 건전한 상식,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신하들의 야단을 듣고 정신이 난 파라오는 다시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흥정을 시작합니다. 흥정의 내용은 여자와 아이들은 남겨두고 남자만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배만 드리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죠. 노예 생활이 그렇게 힘들면 광야길 3일, 예배드리는데 하루, 돌아오는데 3일 해서 1년에 한 두 번 정도 1주일 휴가를, 바캉스를 줄 터이니 협상을 하자, 광야에서 예배 잘 드리고 다시 돌아와 열심히 노예 생활을 하자 -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마침내 메뚜기 재앙이 임했습니다. 예고한대로 메뚜기 때는 이집트 땅의 모든 푸른 풀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습니다. 파라오는 서둘러서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메뚜기 떼를 사라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메뚜기 떼가 물러가자 다시 그는 마음을 닫았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손을 하늘로 내밀어라. 그러면 어둠이 이집트 땅 위에 깔릴 것이다. 어둠이 손에 잡힐 듯할 것이다.” 22모세는 그의 손을 하늘로 내밀었다. 그랬더니 캄캄한 어둠이 3일 동안 이집트 온 땅 위에 깔렸다. 23사람들은 서로를 볼 수 없었고, 3일 동안 그 누구도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사는 곳에 빛이 있었다.

 

9번째 재앙은 예고없이 임했습니다. 모세가 그의 손을 하늘로 내밀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캄캄한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 어둠은 손에 잡힐 듯한 어둠이었습니다. 영어성경(NIV)에서는 darkness that can be felt 라고 해서 “느낄 수 있는 어두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짙은 연기를 보면, 시커먼 연기를 보면 그 연기를 손에 움켜잡을 수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러니까 이 어둠이 그렇게 손에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짙은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아무리 밤이라 해도 달빛도 있고 별빛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과거 시골에 살 때 화장실에 가려하는데 달빛도 없고 별빛도 없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이 덮일 때가 있습니다. 본문의 어둠이 그런 어둠이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파라오는 이집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집트 안에 있는 모든 빛을 거두어 가심으로 이집트 안의 모든 것의 소유주이심을 다시 한번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어둠이라는 것은 따로 어둠이 존재한다기보다는 빛이 없는 상태이죠. 그렇죠? 빛이 하나도 없는, 빛이 절대적으로 없는 상태 - 이것이 어둠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모든 것이 짙은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빛”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예배드리기 위해 무대에 비쳐지는 태양빛을 차단해야 했습니다. 무대에 태양빛이 비춰지면 청중의 주의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태양빛을 차단하기 위해 벽에 거튼을 하고 무대는 안막 커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완전히 빛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좁은 공간의 빛을 차단하는 것도 이런 시간과 정성을 들인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집트 온 땅의 빛을 다 차단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전에 과학시간에 배웠습니다. 빛은 입자입니까? 파장입니까? 빛은 먼지처럼 수많은 빛의 입자가 모여서 밝아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소리처럼 - 소리는 파장이 마치 물에 돌을 던지면 파동이 일어나 퍼지는 것처럼 공기의 파동을 타고 전달되는 것이잖아요 - 파장입니까? 네, 맞습니다. 빛은 입자이면서 또 파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 입자라면 이집트 안에 얼마나 많은 빛의 입자가 있겠습니까? 빛이 파동이라면 이집트 안에 얼마나 많은 빛의 파동이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한번에 다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마치 하나님은 “방 빼” 하는 건물주처럼 “이집트 안에 있는 빛 다 빼” 한 마디 하시니까 이집트 안에 있는 빛이 알아서 다 빠졌습니다. 빛이 다 빠져나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집트 온 땅에 흑암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루 아침에 시각 장애인이 된 것 같은 그러한 재난이었습니다. 

 

여러분, 나 혼자만 시각 장애인이 되는 것과 모든 사람이 시각 장애인이 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나 혼자만 시각 장애인이 되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래도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시각 장애인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돌아다니다가 서로 이마를 부딪힐 수도 있고 기둥에 부딪히고, 한번 다쳐서 피흘리면 누구도 지혈을 해주거나 치료를 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방에 앉아있다가 배고프면 냉장고에 가서 소세지 먹고 그것도 떨어지면 죽어야죠. 그런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여러분, 다른 재앙과 비교해서 바로는 딱 3일만에 백기를 들고 항복했습니다. 그만큼 이 흑암 재앙은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빛을 거두어가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흑암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집트 안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빛까지도 하나님의 소유임을 파라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없어질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어떤 고통이 임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은 내것이다. 내 몸도 내것이고 내 인생도 내것이고 내게 주어진 시간도 내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도 다 내것이고 전부다 내 것이야. -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 깨닫습니까?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내 안에 있는 생명의 불이 꺼져갈 때 깨닫게 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실의 고통입니다. 가족과 같은 반려 동물을 떠나 보낼 때,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평생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한순간 잃어버릴 때, 앙상한 뼈만 남은 것 같을 때 상실의 아픔으로 고통하며 슬퍼합니다. 더 나아가 내 안에 타오르던 생명의 불이 꺼져갈 때, 그 상실의 고통은 극한의 두려움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상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서로를 볼 수 없었고, 3일 동안 그 누구도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사는 곳에 빛이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3일 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떠했습니까? “누구에게나, 그 사는 곳에 빛이 있었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돈이 없다고 적게 비춰지고, 헌금을 많이 했으니까 빛을 많이 비춰주고 헌금을 조금 했으니까 죽지 않을만큼만, 반지하에 사는 것처럼 빛을 조금 비춰주고 - 그런 것 없습니다. 신분,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누구에게나 그 사는 곳에 생명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축하한다며, 우리 통장에 한 사람 당 현금 10억원을 입금해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영접했을 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 빛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절망, 두려움, 의심, 불안, 공포 등 모든 어둠의 세력을 한 순간에 몰아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였고, 우리의 마음을 슬픔과 고통, 절망 대신에 기쁨과 감사, 소망과 사랑으로 넘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상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그것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입니다.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믿고 의지할 때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믿고 의지할 때입니다. 

 

다음 주가 부활절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어떤 점에서 오늘 말씀은 부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필연적으로 상실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래 살고 싶으십니까? 오래 살면 살수록 상실의 아픔은 큽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과 이 땅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영원히 이별의 그 상실의 아픔, 또 사랑하는 배우자, 또 자녀들도 언젠가는 이 땅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참된 기쁨이요, 참된 만족입니다.

 

부활절 1주일 전이지만 생명의 주인이시요, 빛의 창조자이신 이 하나님 안에 우리의 모든 삶의 소망을 두는 그러한 복된 부활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28그러고는 파라오가 모세에게 말했다. “나한테서 썩 꺼져라! 조심해, 다시는 나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네가 나의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니까.” 29모세가 말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다시는 폐하의 얼굴을 뵙지 않겠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에게 꺼지라고 말하면서 다시 나의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파라오는 자기 입으로 마지막 재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집트의 참된 주인은 파라오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참된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둘 때 우리는 상실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까지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참된 소망이신 우리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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