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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출애굽기 9강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한 이스라엘 

 

 

말씀/ 출애굽기 13:17-15:21

요절/ 출애굽기 14:21,22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홍해 바다를 가르는 드라마틱하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멋진 사건입니다. 우리가 보통 홍해 말씀하면 히브리서 11장 말씀과 연관시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이 격언을 따라 주로 출애굽기 사건을 해석할 때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을 연관시켜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고 이집트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죽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믿음을 배워서 각자의 삶 가운데 홍해같은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내자 - 이렇게 적용했습니다. 그러한 해석은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은 새롭게 본문을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본 사건을 세례의 의미를 알려주는 사건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세례의 그 깊은 의미에 대해 배우는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17파라오가 백성을 내보내 주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땅을 거쳐 가는 길로 이끌지 않으셨다. 그 길이 가깝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전쟁에 말려들면 나온 것을 후회하여 이집트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18하나님은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라도 싸울 수 있게 줄지어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이제 목표지인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시나이 반도를 통과해야 합니다. 시나이 반도를 통과하기 위해 당시에는 3개의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해안선을 따라가는 해안도로, 가운데가 족장도로, 남쪽으로 왕의 도로입니다. 실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갈 때에는 이 왕의 도로를 타고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중 최단거리가 어디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디로 가겠어요? 해안도로로 가겠죠. 차타고 죽 올라가면 몇 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길에는 이집트 수비대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의 군대가 주둔해 있습니다. 이 길을 가면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직은 준비가 안된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하기에는 이르다, 만약 전쟁을 하게 되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로 가도록 하셨습니까? 네 왕의 대로가 아닌 광야길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광야길은 어떤 길인지 아십니까?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광야길은 거칠고 황량한 길입니다. 말이 좋아 길이지 이건 길도 아닙니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20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에서 길을 나서서, 광야의 끝에 있는 에담에서 진을 쳤다. 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셨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길을 이끄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밝혀 주셔서, 밤낮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22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길없는 곳으로 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은 인도해 주셨습니다. 길이 없는 곳을 가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미리 잘 닦여진 길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보니까 길이 닦여져 있어요. 명문대를 가려면 유치원부터 명문 유치원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다 있어요. 명문대를 가려면 어디어디 동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그 길이 다 있어요. 그런데 길이 닦여져 있는 것이 좋은데 문제가 뭐냐면 그 길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경쟁에 낙오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길을 찾아야죠. 

 

우리가 고속도로를 가다가 차가 너무 많으면, 국도로 가죠. 국도도 차가 너무 많으면 한적한 시골길로 갈 것입니다. 명문대 가는 길을 탈락하면 무슨 길을 가야겠습니까? 돈 많이 버는 길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최소한 무시받지는 않고 살 수 있겠죠. 그 다음에는 무슨 길이 있습니까?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나보다 돈 잘 버는 배우자, 능력많은 배우자를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똑똑한 자식을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자식, 돈 잘 버는 자식을 만나면 인생이 역전이 되겠죠. 

 

그런데 이렇게 길을 갈아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한 TV 방송에서 무려 50년동안 고시공부하는 고시낭인의 이야기가 방영되었습니다. 그는 퇴근시간에 인파가 가득한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칫솔을 팔고 있었습니다. 제작진이 그가 사는 3평 남짓한 신림동 고시원을 방문했습니다. 쓰레기장을 방불할 정도로 더럽고 지저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버드대 경제학 교재를 영어로 술술 읽고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변호사들이 전부 자기 동기 아니면 후배라고 했습니다. 제작진이 직접 확인해보니 정말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66학번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분은 서울법대까지는 잘 왔는데 고시 앞에서 막혔고 그때 그 길을 빨리 포기했어야 했는데 포기하지 못하고 무려 50년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제작진이 알아보니 이 분의 경우는 조현병이 의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기가 원래 가려고 계획했던 길에서 경쟁에서 낙오하잖아요, 그러면 심리적으로 쉽게 다른 길로 잘 못갈아탄다고 합니다. 실패감, 그 좌절감 - 이것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낙오한 청년들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게임이나 하면서 소중한 젊음을 낭비해 버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이처럼 잘 닦여진, 미래가 보장된 길만을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도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 길을 더 열심히 가야 합니다. 문제는 뭐냐면 하나님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 길만이 유일한 길이고 그 길에서 낙오하면 인생이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다른 더 중요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길, 우리의 인격이 성장하는 길,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어떻게 보면 거치른 광야처럼 어디로 가야될지 막막하고 방향도 없는 것 같고 정말 가기 힘든 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길이 되어주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해주십니다.

 

14:1-4절을 보십시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라. 뒤돌아 가서 비하히롯 앞 믹돌과 바다 사이에 진을 치라고 해라. 너희는 바알스본 앞, 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쳐야 한다. 3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아직 이 땅에서 헤매고 있구나. 그들이 광야에 갇혔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4내가 파라오의 마음을 닫아 버려서,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파라오와 그의 온 군대에게 내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내가 여호와인 것을 이집트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다.

 

하나님은 한참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뒤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운전해 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길은 죽 가는 맛입니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면 어떻게 됩니까? 톨게이트로 다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을 돌아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때 운전자들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내가 길을 잘못들어 이렇게 고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시 뒤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고 하셨습니까? 비하히롯 앞 믹돌과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했지만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지명의 뜻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믹돌은 높은 망대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이집트 군대가 국경지대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는지 살펴보면서 사방을 관측할 수 있는 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비하히롯은 ‘비’란 입구 혹은 입이란 뜻으로 아마도 바다가 시작되는 곳일 것입니다. 여러분 한강을 따라가다가 서해 바다가 시작되는 곳을 가보면 어떻습니까? 물길이 확 넓어집니다. 보통 헤엄쳐서 가볍게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건너편 바알스본은 바알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는 높은 산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앞으로는 넘실거리는 바다가 있고, 뒤로는 믹돌 산악지에 진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이곳에 적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믹돌 언덕에 기어오르다가 적의 칼이나 창에 죽겠죠. 아니면 비하히롯 바다에 빠져 죽을 것입니다. 군사학적으로 볼 때 절대로 진을 치면 안되는 곳입니다. 

 

믹돌에 아마도 이집트 군인이 관측하고 있다가 파라오 왕에게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이 보고를 들은 파라오 왕은 굉장히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파라오의 마음에 추격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겨 이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드러내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5-9절을 보십시오. 5이스라엘 백성이 달아났다고 누군가가 이집트 임금에게 알렸다. 그러자 그 백성에 대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달라졌다.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스라엘을 내보내어 더는 노예로 부리지 못하다니!” 6그래서 파라오는 말에 전투수레를 메운 다음에 군대를 거느리고 나갔다. 7파라오는 아주 좋은 전투수레 600대와 이집트의 다른 모든 전투수레를 거느렸다. 전투수레마다 세 명이 타고 있었다. 8여호와께서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마음을 닫아 버리신 까닭에, 파라오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쫓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을 높이 들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9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을 뒤쫓아 따라잡고, 바닷가에 진을 쳤다. 파라오의 전투수레를 끄는 말과 기마병과 군대가 모두 비하히롯 옆, 바알스본 앞에 진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파라오가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는 최고 성능의 전투수레 600대와 그 밖의 모든 전투수레에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전투수레 한 대마다 3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속력으로 이스라엘을 추적했습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10파라오가 가까이 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눈길을 돌려서 보았다. 저기,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들을 뒤쫓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11그들이 모세에게는 이렇게 따졌다. “이집트에는 묻을 데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데려와 죽게 하려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것인가요? 12우리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집트에서 노예 노릇이나 하게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세요.’라고요.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이집트에서 노예 노릇이나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이집트 군대의 전투수레는 6.25전쟁 때 소련제 탱크와 같았습니다. 소련제 탱크는 미군이 준 바주카포에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칫 한 후에 다시 크르렁 소리를 내며 국군을 향해 진격해 왔습니다. 이 모습을 본 국군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처럼 600대의 최신형 전투수레로 중무장한 채 칼과 창을 들고 달려오는 파라오의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따졌습니다. “이집트에 매장지가 부족해서 우리를 광야에 묻으려고 이곳에 데려왔습니까? 그러길래 우리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집트에서 노예 노릇이나 하다가 죽도록 내버려 두라고요. 광야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느니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하다보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과 정말 똑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면 처음 나에게 복음을 전해 준 분에게 가서 따지고 싶습니다. 

 

“그러길래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내가 알아서 내 인생을 살테니까 가만 나를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렇게 나한테 복음을 전해서, 어짜피 이렇게 될 건데 그냥 마음껏 내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 말은 크게 잘못된 말입니다. 지난 주 저는 한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아주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최근 이혼을 하고 새로 여자를 얻어 단칸방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분은 영화배우 정우성을 꼭 닮았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광주은행다니던 영화에서나 볼법한 예쁜 신부를 우리 집에 데려왔던 날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예비 신부가 정우성 닮은 남편될 분을 바라보는 그 표정에 얼마나 사랑이 넘치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이후 두 분은 아들, 딸을 낳고 잘 살았습니다. 아들과 딸도 엄마 아빠를 닮아 참 예쁘고 잘 생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이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정우성처럼 잘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이 있어서 자신을 잘 지키면 좋았는데 한 몇년 지방근무를 하다가 어떤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바람이 났습니다. 이 사실을 들킨 후 와이프가 몇 번 기회를 주었지만 끊지 못하고 결국은 이혼을 하고 최근 단칸방에 새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저는 이분이 아주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그 분의 부인과 자녀들이 겪을 배신감과 마음의 고통이 너무 많이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너무 힘들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처음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분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앞으로 가자니 시퍼런 홍해바다에 빠져죽을 것이 뻔하고 뒤로 가자니 아들을 잃은 분노한 이집트 군대의 칼날에 목숨을 잃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정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런 형편에 처하면 차라리 처음부터 신앙생활 하지를 말 걸 하는 후회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죄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큰 고통을 주는 삶, 자기 자신도 큰 고통을 겪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13그러자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리를 잡고 서서, 오늘 여호와께서 그대들에게 베푸시는 도움을 잘 보십시오. 오늘 그대들이 보는 이집트 사람들을 더는, 영원히 보지 않을 것입니다. 14여호와께서 그대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므로, 그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불평하는 그들에게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리를 잡고 서서 오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도움을 보라고 말합니다. 오늘 그들이 보는 이집트 사람들을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대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므로 그대들은 쉿! (원문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쉿,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진퇴양난일 때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이 임박한 때입니다. 그 때에는 말을 아끼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15-20절을 보십시오. 1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 주어라. 16그리고 너는 너의 지팡이를 들어 올려서 손을 바다로 내뻗어라. 그래서 바다가 갈라지게 하여라.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 마른땅 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17보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을 닫아 버려서,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따라 들어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파라오와 그의 군대와 전투수레와 기마병들에게 나 스스로를 영광 가운데 드러낼 것이다. 18내가 여호와인 것을 이집트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파라오와 그의 전투수레와 기마병들에게 나 스스로를 영광 가운데 드러낼 것이니까.” 19이스라엘 진영의 앞에서 가던 하나님의 천사가 움직여 그들 뒤로 갔다. 그들 앞에 있던 구름기둥도 움직여 그들 뒤에 가 있었다. 20이집트 사람들의 진영과 이스라엘의 진영 사이로 구름기둥이 끼어들었다. 그 구름이 있어 저쪽은 어두운데, 이쪽은 밤을 밝혀 주었다. 밤새도록 이쪽과 저쪽이 서로 가까이 가지 못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 올려 손을 바다로 뻗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구름 기둥을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 군대 사이로 이동시켜 그들이 이스라엘 쪽으로 진군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21모세가 바다 쪽으로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밤새도록 세찬 사막 바람으로 바닷물이 뒤로 물러가게 하여, 바다를 마른땅으로 만드셨다. 물이 갈라졌다. 22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다 한가운데 마른땅으로 걸어갔다. 물이 그들에게는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마침내 모세가 바다 쪽으로 손을 내뻗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밤새도록 세찬 사막 바람으로 바닷물이 뒤로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이 갈라지고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땅으로 걸어갔습니다. 물이 그들에게 오른쪽과 왼쪽에서 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까지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의 빛으로 본문을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해석, 그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마른땅처럼 건넌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 이렇게 의미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장례식 장 부르는 찬송가 중에 “요단강 건넌 후” 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교회 안다니실 때 교회 다니는 친구 장례식장에서 이 찬송가를 듣고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왜 죽음을 의미하는가 하면 나중에 출애굽 2세대, 홍해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출애굽 2세대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통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체험하게 됩니다. 이에 비해 본문은 출애굽 1세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사건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해안도로를 따라 갔더라면 그들은 그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항상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홍해바닷길은 한 번 건너면 다시는 이 길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물론 마음먹고 다른 길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갈 수 있겠지만 상징적으로 이 길은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나는 여러분이 모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조상들이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들 바다를 가로질러 건너갔다는 것을요. 2그들은 모두 구름 속에서 또 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연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지도력 아래 모세를 믿고, 또 하나님을 믿고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의미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너 예수님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제 강릉센터 최이삭 목자님 딸 최사라 자매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시작되어 아버지 최이삭 목자님이 딸의 팔짱을 끼고 행진한 후 신랑에게 딸을 넘겨 주는데 그때 아버지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딸을 신랑에 넘겨주는 그 순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죠. 

 

또 한 가지 비유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태아가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양수 속에서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 편해요. 눈감고 있으면 들려오는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는 나를 향한 사랑의 소리입니다. 음식도 탯줄을 통해 엄마가 제공해주고 숨도 엄마가 대신 쉬어주고 응가도 탯줄을 통해 해결되니 너무도 편해요. 그러다가 심심하면 엄마 배를 빵 발로 차면서 놀면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거기 계속 있을 수 없잖아요. 때가 되면 양수를 터치고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젖도 스스로 빨고 숨도 스스로 쉬어야 합니다.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이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하면서, 성장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받는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죄와 죽음의 강을 영원히 건넌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믿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클럽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호회 회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너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 X국의 김누가 선교사님이 급성 당뇨쇼크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김누가 선교사님은 X국에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한의사로 낮에는 환자들을 돌보고 밤에는 성경읽고 연구하느라 늘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특히 주일 메시지는 준비해야 하는 토요일이 되면 밤을 새셨습니다. 이분과 함께 5년간 동역한 곽상훈 목자님의 경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글로 6페이지 메시지를 준비한 후 X국어로 번역하면 언어적 특성으로 인해 2페이지나 3페이지로 분량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내용을 채워넣느라 고민과 고난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 분은 밤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에너지원으로 1.5리터짜리 콜라를 곁에 두고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당뇨병이 생겼습니다. 

 

이후 여러 사정상 더 이상 X국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럴 경우 보통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우리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교사명을 내가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캄보디아로 다시 선교사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캄보디아어를 새롭게 배우며 선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의사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휴가를 내어 지방에 있는 다른 단체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무료 진료 봉사를 했습니다. 소천하신 그 주도 지방 봉사를 다녀왔는데 몹시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부활주일이었고 선교사님 가정이 양들 음식을 서빙할 순서였습니다. 누가 선교사님은 부활절이기 때문에 양들을 좋은 음식으로 섬기고 싶었습니다. 삼계탕을 해주고 싶어 시장에 가서 삼계탕용 닭을 사 왔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신 김루디아 선교사님이 주일 대표기도였고 캄보디아어가 서툴어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너무 피곤하다며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회개하고 새벽 1시경까지 캄보디아어 기도문을 작성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무리가 되어 다음날 급성 당뇨쇼크가 왔습니다. 의료시설이 발전한 한국이었으면 살 수 있었겠지만 여러 모로 열악한 환경인 캄보디아에서 결국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한 주가 지나 선교사님의 유해를 한국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김루디아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김루디아 사모님, 또 경희문 센터의 최도영 목자님을 통해 여러 간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은혜롭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김루디아 사모님은 처음에는 큰 충격과 슬픔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늘에서 오는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자들, 선교사님들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넜습니다. 여러분,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넌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좀 두려울 수 있지만 그러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슬픈 일도 - 물론 처음에는 좀 슬플 수 있지만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넌 사람의 마음에서는, 입술에서는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감사의 찬양 - 찬양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15장에 모세의 노래, 미리암의 노래가 기록된 이유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삶은 어떤 삶이라고요? 죄와 죽음의 바다를 건넌 삶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감사의 노래를 부릅시다.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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