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고린도전서 7강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고전 8,9장)
2025.11.03 18:28
2025 고린도전서 7강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말씀/ 고린도전서 8,9장
요절/ 고린도전서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간의 바둑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당연히 이세돌 9단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바둑은 그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이기 때문에 기계인 인공지능이 그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기 어렵다, 또 바둑은 체스와 달리 굉장히 직관적이고 예술성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시합에서 인공지능이 일방적으로 승리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첫 판을 두면서 처음에는 테스트를 해보고 여유있게 하다가 어느순간 이 인공지능이 엄청나게 세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총 다섯 번인가 두었는데 딱 한 번 이겼습니다. 나중에 고백하기를 실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계속 두다보니까 아 이렇게 하면 버그를 일으키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왠지 여길 두면 또 버그를 일으킬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일종의 꼼수를 두어서 이겼다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인공지능 기술은 오늘날 ChatGPT를 비롯한 여러 AI 챗봇 툴을 통해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AI가 무서운 것이 예를 들어서 이 인공지능에게 지금까지 제가 전했던 모든 설교를 다 입력하고, 그 다음에 이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대략적인 취향과 성향, 데이터를 입력한 다음에, 오늘 고린도전서 8,9장 본문을 가지고 이러한 주제로 설교를 좀 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하면 AI가 제 목소리와 음성, 또 얼굴까지 거의 싱크로율 99.9%의 모습으로, 만약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괜찮다면, 지금은 99.9%는 아니겠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언젠가는 정말 문엘리야 목자님이 이제 필요없구나 그런 정도로 될 것입니다.
의료계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의료 기술이 더 발전할수록, CT나 MRI 찍은 것을 판독하는데 의사보다도 인공지능이 더 정확하게 판독할 것입니다. 사실 이미 지금도 의사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다고 해요. 법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AI가 훨씬 더 빠른 시간내에 모든 법조문 또 지금까지의 판례를 다 검색해서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앞으로 이 AI를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과 활용할 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 또 AI가 뭐여 하는 그러한 활용할 줄 모르는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고 합니다.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앞으로 죽죽 나갈 것이고,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마치 인간 사이에 섞여사는 오랑우탄이나 원숭이같이 느껴지는 그러한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쓰는 대상인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자기가 갖게 된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그러한 앞서가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바울은 참된 크리스챤이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8:1-3절을 보겠습니다. 1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하여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식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거들먹거리게 만들고, 사랑은 사람들을 바르게 세워 줍니다. 2어떤 사람이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그는 알아야 하는 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3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을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8-10장은 고린도 교회 내 큰 이슈가 되었던 과연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당시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성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당시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전세계 어떤 사람들보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philosophy - 철학이라는 말도 지혜, 또는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이 고린도 지역 사람들에게는 어떤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냐면, “지식은 곧 힘이다.” 지식이 뭐라고요? 힘이다. 고린도 사람들은 이 힘이라는 말 대신에 자유 혹은 권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지식은 그 지식을 깨달은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 또 어떤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대학을 왜 갑니까? 진리를 알기 위해서, 인생을 더 깊이있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 이것은 저희 때 했던 얘기에요. 제가 대학 들어갈 때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수업 10분만 늦어도 난리가 나고 생활기록부에 지각 기록되고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는데 대학에 들어와서 수업도 빼먹고 놀러가고 너무나 자유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아 공부가 인생의 다가 아니구나 하는 놀라운 철학적 깨달음도 얻고요, 또 어떤 한 영문법 교수는 한학기 내내 영문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개똥철학을 늘어놓고 또 성적도 자기 마음대로 자기를 칭찬하면 A, 비판하면 D 아니면 F 이렇게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희 학년 때는 거기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것도 낭만이다, 그리고 어떤 학점을 받아도 취업이 잘 되었거든요. 대기업에 다 취업이 되니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제가 김강석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요즘 학생들한테는 교수가 내가 왜 이 학점을 주었는지 메일로 문의가 오면, 또 심지어 찾아온다고 해요 그러면 아주 친절하게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교수가 해야하는 중요한 직무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무슨 낭만이니,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사는 법을 배우느니 이런 것보다도 어떤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기 원합니다. 또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하고 토익에 만점에 가까운 고득점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그것 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애씁니다.
어제 잠비아 선교사였던 김느헤미야 선교사님을 만나서 잠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분은 성균관 대학교 농대 다니셨는데 대학시절에 저와 함께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기에 이 분은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안했습니다. 틈만 나면 성경공부하고 일대일하고 소감쓰고 또 틈만 나면 전도하고 그러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잠비아에 평신도 선교사로 갔습니다. 선교사 생활을 다 마치고 은퇴해서 고국에 돌아오니까 먹고 살 길이 막막한거예요. 그런데 이 분이 용기를 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지하 2층에 있을 때 주중에 가보면 항상 이 분이 홀 구석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에요. 다른 층보다 조용하고 좋으니까 그곳을 도서관 삼아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주택관리사,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 분이 말하기를 학생시절 안했던 공부를 원없이 다 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자격증을 취득해서 현재는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포인트는 오늘날에도 이렇게 자격증이 있고 전문지식이 있으면 돈이 되고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포인트는 그러한 지식이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사먹을 수 있는 자유, 또 입고 싶은 옷이 있으면 사입을 수 있는 자유, 여행가고 싶으면 여행갈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죠.
4-6절을 보십시오. 4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우상은 아예 없다.”라는 것과 “하나님 한 분 말고는 신이 아예 없다.”라는 것을요. 5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신’도 많고 ‘주’도 많이 있지요. 6그러나 우리에게 신은 하나님 한 분, 곧 아버지가 계실 뿐입니다. 그분에게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우리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도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또한 주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우리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도 그분을 통해서입니다.
제가 좀 잇몸이 안좋아요. 이빨이 날 공간이 부족해서 이빨이 민주공화국, 자기 마음대로 났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젊은 나이에 임플란트를 하게 되었어요. 일곱 개인가 여덟 개인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에 씌우는 크라운, 금이 쌓였어요. 그 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재작년인가 갑자기 생각나서 금은방에 팔았습니다. 그랬더니 60만원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난 2년 사이에 금값이 두 배인가, 세 배인가 뛰었습니다. 금값이 뛰리라는 지식이 있었다면 제가 180만원에 팔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식이 없어서 손해를 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고린도 지역에 이렇게 신전이 많고 이렇게 많은 신을 섬기고 거리에 나가보면 수많은 신전에서, 오늘날 카페처럼 많은 신전에서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고 신을 섬기고 또 제사 음식을 먹는데 이러한 신들이 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허상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세상에 참 신은 하나님 한 분이다 - 이 놀라운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지식을 마치 제가 금값이 2년 있으면 세 배로 오를 것이다라는 지식을 얻은 것처럼 정말로 놀라운, 나에게 실제적인 자유와 힘을 가져다주는, 실제적인 유익을 가져다주는 그러한 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지역은 우상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 신들이 정말로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내가 제사를 어떻게 드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믿고 사는 그런 사회였고 그 믿음 위에서 고린도 지역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굴러가는 그러한 구조였거든요. 그런데 나는 그게 다 허상이라는 지식을 알게 된 것이죠.
여러분, 그렇다면 이것은 놀라운 지식입니다. 이걸로 내가 얻을 수 있는 생활의 자유, 경제적인 이득, 조금만 연구해보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포인트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자유를 내가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해본 끝에 가장 먼저 많은 사람들이 한 행동이 뭐였냐면 토요일이나 주중에 우상에게 예배드리는 곳에 가서 참석을 한 거예요. 그러면서 속으로 ‘야 저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헛된 우상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구나, 헛짓거리를 하고 있구나.’ -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2부의 만찬 순서에 나오는 소갈비를 뜯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 소갈비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뜯고 있는데 자기는 막 뜯으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입니다.
현재 그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데, 7-13절을 보겠습니다. 7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 그 지식이 있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 젖어 있어서 자기들이 먹는 고기를,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듯이 먹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더럽혀집니다. 8그러나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곁에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모자라게 되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넘쳐 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9그렇지만 조심하세요! 여러분의 이 권한이 약한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10지식이 있는 그대가 우상 신전에서 자리 잡고 앉아 먹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본다고 합시다. 그러면 약한 그 사람의 양심이 힘을 얻어 그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그러면 그 약한 사람이 그대의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형제입니다.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12이렇게 해서 여러분은 형제자매들한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에 상처를 줍니다. 이리하여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바로 이런 까닭에, 음식이 내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고기를 아예 영원히 먹지 않겠습니다! 내가 나의 형제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문에스라 형제와 이바울 형제가 예전에 우상을 섬겼습니다. 제우스 신전에 가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문에스라 형제가 강한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바울 형제에게 카톡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야, 우리 이번에 제우스 예배 때 특별 한우 소고기 나온대. 2부 순서로 한우 소고기 나온대. 예배만 드리면 공짜로 준대. 바울아, 가자.” 바울이가 답했습니다. “형, 그렇게 해도 돼? 안되는 거 아니야? 우상 숭배 아니야?” 에스라 형제가 카톡으로 답장했습니다. “야, 너는 왜 그렇게 지식이 없냐? 바울 목자님한테 배웠잖아. 우상은 없는 거야. 그냥 가서 참석만 하고 고기 뜯으면 돼, 괜찮아 와?” “그래?” “그래 괜찮아, 정원이도 데리고 와.”
그래서 이제 세 사람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달이 났습니다. 참석하고 나서 바울 형제가 굉장한 마음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뭔가 우상에게 예배드린 것 같은, 내가 머리로는 이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마음으로는 아직 안내려왔어요. 우리 그런 말이 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 서울과 부산보다 먼 곳이 머리와 가슴의 거리라고 하잖아요.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아직 안내려 온 겁니다. 그러니까 우상숭배를 했다는 느낌을 가진 거에요. 그러면서 굉장한 죄의식에 시달린 것입니다.
현재 고린도 교회 내에 일어난 상황이 바로 이러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바울이 준 권면이 무엇입니까? 다시 뒤로 돌아가서 8:1-3절을 보겠습니다.
1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대하여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식이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거들먹거리게 만들고, 사랑은 사람들을 바르게 세워 줍니다. 2어떤 사람이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그는 알아야 하는 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3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을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이 말씀은 정말 중요한 크리스찬의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식은 오늘날로 치면, 어떤 능력은 자기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거들먹거리게 만듭니다. 잘난척한다는 것이죠.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교만해지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취득하는 그런 학위, 또 여러분이 취득한 자격증, 또 여러분이 갖추게 된 외국어 실력, 또 기타 오늘날 이 시대 필요한 여러가지 지식들 - 그러한 것들은 내 자신을 성장시키고 업그레이드시키고 세우는 것입니다. 맞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난척 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죠. 반면에 이에 비해서 사랑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사랑은 내가 아닌 사람들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주 안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현대 청년들은 여러가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자유롭게 사는 것 - 여기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요. 하지만 우리가 성경적으로 볼 때 결혼해야 합니다. 왜 결혼해야 합니까? 그것은 결혼 생활을 통해서 내가 아닌 상대방을 세우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나의 성장보다 상대방의 성장과 성숙, 행복을 더 우선시하는 법을 결혼 생활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제 메시지에도 나왔지만 백요셉 목자님,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다보니까 이분이 젊었을 때는 축구도 잘하고 굉장히 건장한 분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되었습니다. 황인배 목자님 보세요.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다보니까 거의 뭐 뼈만 남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우리 사모님들은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아가씨 시절의 몸매와 아름다움을 다 잃었습니다. 아가씨 시절에는 목소리도 청순하고 예쁘고 그랬는데 특히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분노에 가득한 그러한 목소리로 변했습니다.
이런 아픔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결혼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결혼 생활을 통해서 나를 세우는 것 못지 않게 오히려 나를 세우는 것보다 상대방을 더 사랑하고 세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교육의 장소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청년팀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가느라고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죠. 물론 본문 말씀을 핑계로 열심히 공부 안하고 자기 계발 안하면 안되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같은 청년팀 동역자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혹은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지, 어떤 조언이 필요하지 않은지 돌아보는 우리 청년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 하면서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또 우리 목자님들, 노후 준비로 바쁘실 줄 압니다. 노후 준비로 매우 바쁘시겠지만 우리 동역자 가정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또 어떤 위로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조언이 필요하지 않은지 연락해보고 서로 관심을 갖는 우리 종로7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장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서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이 권한을 포기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이 왜 그 권한을 포기했을까요? 고린도후서 2:17절을 보겠습니다.
고후2:17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먹는 저 많은 장사꾼들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바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 보따리를 들고와서 “여러분, 제가 여러분의 삶에 실제적인 큰 도움이 될 지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꽹과리를 치면서 광고하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예요. 그러면 강의를 하고 강의를 한 다음에 강의료를 받는 것입니다. 한 시간당 5만원씩 받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고린도 지역에 사도 바울도 그렇게 복음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구나 그런 오해를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데 내가 생활비를 받으면 안되겠다, 내가 생활비를 받으면 계속해서 이런 오해를 할 것이 아닌가, 복음에 대해서 돈주고 사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생활비를 안받기로 결단을 한거죠. 그래서 뭘했죠? 천막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천막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귀한 복음의 동역자를 만났죠. 그 동역자가 누구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지금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지식을 갖게 되어서 그 지식 때문에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다면 고린도지역 사람들은 절대 손해 안보고 그 유익을 추구하는 그러한 캐릭터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같죠? 자기의 권리를 조금도 내려놓지 않고 120% 다 찾아먹으려 하는, 10원도 손해안보고 이익을 얻으려 하는 그러한 현대인들의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지금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내가 복음을 위해서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나의 권리를 포기했다 -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포기했기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어요. 천막만드는 일 하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한거죠. 오늘날로 치면 교회 목회하면서 생활비받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야간 알바를 하는, 택배 알바를 하고, 주중에 택시를 모는 그런 고생을 한 것이죠.
지금 바울이 말하려는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지식을 추구하고 그 지식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것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진 고린도 지역 사람들에게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마땅한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본을 보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복음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오해를 하지 않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마땅한 나의 권한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계속해서 내가 복음을 위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연약한 사람에게는 바울이 연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섬세한 사람에게는 바울이 매우 섬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율법주의자에게는 마치 자기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현대 사회는 끝없이 자기 개발과 지식, 또 자신의 삶의 행복, 만족, 유익을 추구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를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우리는 지식보다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그러한 크리스챤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