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추수감사절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시 65편) - 이어거스틴
2025.11.16 13:08
2025년 추수감사절 (이어거스틴)
주의 은택으로 한해를 관씌우시니
말씀/시편 65편
요절/시편 65:11 “주의 은택으로 한해를 관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한해 일가운데 풍성한 은혜로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특별히 오늘이 제 60번째 생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기념해서 오늘 추수감사예배 말씀을 전하는 은혜를 허락하시고 저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로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시간 귀한 하나님의 말씀 시편65편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가운데 년사에 관을 씌우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리는 귀한 시간 될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같이 요절말씀읽고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자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예배드리는 이시간저희 심령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이 흘러넘치게 하시고 기쁨으로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축복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부족한 죄인을 세우셨사오니 죄인의 입술을 통해 생명의 말씀이 증거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인간의 불행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네, 바로 감사를 잊은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시고 부족함없는 에덴동산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욕심을 부렸습니다. 선악과를 탐내고 그것을 먹지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감사치않고 탐심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간이 불행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회복하는 것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시편65편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을 두파트로 나누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말씀통해서 특별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우리 젊은 청년 형제자매님들이 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려야되는가 새롭게 깨닫는 시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1장 복있는 사람 (1-4)
시편65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를 찬양하는 시입니다. 저자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 마땅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하나님께 찬송드리는 것은 단순한 감정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며, 주님께 서원을 이행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다윗은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육체가 나아와야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하여 때로는 기도할 가치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질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십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 신음과 고통까지도 다 들으시고 체휼하십니다. 그 누구와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과 고뇌와 한을 주님께 다 토로할 때 나보다 나를 더 잘알고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다 들으시고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이것은 다윗의 체험적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는 한때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살인죄까지 범함으로 완전범죄를 꿈꾼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통일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자신의 이 가증스런 죄악을 그냥 덮어버리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나단선지자의 책망과 도움으로 가까스로 회개의 기회를 얻게었을 때 자신이 하나님앞에 얼마나 큰죄인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통회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기도가 시편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38편과 32편입니다. 새한글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오~여호와여 진노하여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노여워하여 나를 벌하지 마소서. 주님의 화살이 내안으로 파고들었고, 주님의 손이 나를 짓누르고 있나이다. 내 살에 성한데가 없습니다. 주의 분노때문에. 내 뼈에 상하지 않은데가 없습니다. 내 죄때문에. 내 잘못이 내 머리를 넘어섰습니다. 무거운 짐처럼 짓눌러 내가 견딜수 없습니다. 부푼데가 냄새나고 썩었습니다. 내 어리석음때문입니다.(시편38)”
“내가 침묵 했을때는 내 뼈가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하루 종일 내가 신음했지요. 밤낮으로 주님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으로. 내 혀가 바싹 말랐습니다, 여름열기때문에. 내가 내 잘못을 덮어버리지 않고 내 죄를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내 지은죄를 두고 여호와께 고백해야지~’라고 이때 주님께서 친히 내 죄악을 용서하시고 치워주셨습니다. 셀라”(시편32)
다윗이 고백했듯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죄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으며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나아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분께 나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를 해결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임한 이 놀라운 은혜가운데, 자신을 택하시고 친히 가까이 오게하사 주의 뜰에 살게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하사 주의 뜰에 살게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통일이스라엘의 왕으로 살았지만 죄의 장벽에 가로막혀 하나님께 가까이가지 못했을 때 뼈가 쇠하는 고통으로 잠시라도 평안할 날이 없었고 진액이 다 빠져나가 여름가뭄의 마름같이 될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앞에 보여지는 삶이 아무리 그럴싸해 보이고 럭셔리한 삶을 살아간다 할찌라도 죄의 장벽에 막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내면은 채울수없는 공허감과 황폐함, 또 죄가 가져다주는 죄의식의 고통으로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체험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알았기에 그 자신의 죄와 허물을 사함받은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시편32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
“죄사함의 은혜” 죄로 인한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평생을 감사드려도 모자른 은혜중에 은혜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여기 계신분들은 모두가 다 이 죄사함의 은혜로 인해 감격의 눈물을 많이 흘리셨을 것입니다. 이 시간 죄의 장벽에 갇혀 일생 어둠 속에 거하던 저희들을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하사 죄 사함의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4절말씀을 감격에 겨운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하사 주의 뜰에 살게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 청년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한번뿐인 이세상을 살면서 진정으로 만족과 기쁨이 있고 행복이 흘러 넘치는 인생을 살고 싶지않습니까? 네~ 이시간 확신컨대 이 자리에 참석해서 감사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셨기에 모두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이러한 기쁨과 행복을 간절히 원하고 추구하지만 안타깝게도 일평생을 만족주지못할 세상우물을 기웃거리고 자신의 이기적욕망을 채우는데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립니다. 이시간 주님의 택하신자들로써 더 이상 만족주지 못할 세상우물가를 기웃거리지않고 주의 아름답고 거룩한 성전으로 만족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될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시간 말씀을 통해 제가 살아온 60년의 삶을 돌아보게됩니다. 저의 삶은 하나님 없이 세상우물가를 기웃거리며 이기적욕망을 채우고자했던 허망했던 30여년의 세월과 그리고 주의 뜰에 거하며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는 복된 30년의 삶으로 정확히 나뉘어 볼수가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제 60년의 삶은 반반인생이었네요~)
저는 1965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전인 오늘, 마을 뒷산의 산세가 용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유래된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용두동위치는 청량리,제기동근처인데, 지금 살고있는 동네인 휘경동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입니다. 그러고보면 결혼후 약25년간 거주했던 외대근처 이문동과 대학원포함 약6년간 다녔던 외대 이문동캠퍼스에서의 생활을 포함시킨다면 인생의 절반이상을 3Km근방내에서 지내왔음을 새삼 새롭게 깨닫게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게하심으로 UBF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하시고 특별히 외대캠퍼스를 동역하여 섬기도록 하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리게됩니다.
부산에서 대부분의 어린시절을 보낸 저는 저를 유난히 사랑해주신 외할머니의 죽음과 우연히 목격하게된 뺑소니차량에 의한 어느 청년의 죽음의 잔상들이 제맘가운데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음과 함께 그 존재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는 개념은 어린마음에 큰충격과 함께 깊은 허망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린시절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저는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얘기했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사춘기시절내내 앓게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정확한 병명을 알수없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볼 때 그 병이 공황장애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자가호흡이 힘들어져 응급실로 몇번 실려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지어진 강남1세대아파트 상징이었습니다. 그 주변에 5개의 명문고등학교(경기,휘문,서울,숙명,경복고등학교)가 이전해서 강남8학군을 이루며 이 동네는 지금까지도 강남지역의 교육과 부동산의 상징적인 지역이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초등학교를 입학할즈음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했는데 거의 서울 전역을 돌다보니 초등학교만 서너군데를 전학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논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80년대초 이곳 은마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말죽거리잔혹사에 배경이되기도 한 영동중학교를 통학할때는 아직 개발전이라 지금의 매봉산이 있는 도곡동땅을 가로질러 집까지 걸어서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휘문고등학교를 다닐때는 집에서 한블럭정도 떨어진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비교적 수월했지만 졸업할때까지 저는 삶의 방향을 잡지못하고 졸업과 함께 인생방황의 첫걸음을 내디뎌야만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평범해보이는 삶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초,중고를 거쳐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를 들어가고, 대학졸업과 함께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자식을 놓고 그럭저럭 살다가 늙어서 때가되면 어차피 죽음으로 끝나는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철학적 물음을 반복하며 답없는 인생에 대한 절망감과 허무감으로 고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가고싶은 대학이나 학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대학을 들어가면 이 안개속 미로와 같은 인생에 혹시 출구를 찾을수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가운데 남산 후암동에 위치한 정일학원에 등록해서,재수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그 학원을 가려면 후암동종점에 내려서 108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는데, 매일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되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5년 당시에는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는데 고교시절 테헤란로의 유래를 듣고 지냈던 터라 이란이란 나라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과 점수를 따라서 한국외국어대학 이란어과에 2지망으로 지원했는데 수석으로 합격케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제 의도와 관계없이 선배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저의 외적모습만을 볼 때 집은 강남대치동이고, 첫인상도 그리 나쁘지않게 훈남처럼 생긴데다가 수석으로 들어왔으니 찌질했던 과거의 모습을 전혀 알수없는 선배들에게는 화려하게 잘포장되어진 진열상품처럼 비쳐졌을 것입니다.
저의 삶은 이때부터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많이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캠퍼스생활중 겪었던 몇가지 사건들과 에피소드를 잠시 소개하면 저의 헛된 세상소망과 남들앞에 보여주기식 삶이 얼마나 허탄했는가를 엿볼수가 있습니다.
첫번째 90년대에 강남에서 유행했던 오렌지족의 원조격인 헌팅족의 삶. 1학년입학과 함께 연세대에 다니던 중학교동창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저와 그 친구는 지금의 신사동과 압구정동을 무대로 헌팅하는 재미에 한동안 푹빠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에는 소위 귀티와 날티가 동시에 풍겨야지 한마디로 프리패스였습니다. 대학생으로의 특권의식과 소위 강남출신이라는 배경이 상대에게 그럴듯하게 비춰지면서 매일 저녁 새로운 상대를 좇아 말을 걸고 함께 호프집과 카페, 디스코나이트클럽을 돌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친구와 변화무쌍한 삶을 즐기고자 했고, 모든 하루삶의 기준은 재미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있었습니다. 재밌으면 선이고 지루하면 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활도 약3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의 선을 넘는 행동과 서로간의 욕구충돌로인해 우정에 금이 가버렸고 결국 깨어진 우정과 함께 이 생활은 쫑이 나버렸습니다.
두번째로 과MT방갈로 캠프화이어 사건. 이 사건은 다음날 교내신문에 실릴정도로 상당히 센세이션한 사건이었습니다. 1학년2학기 이맘때즈음으로 기억되는데 약20여명의 과친구들과 함께 가평쪽 방갈로 하나를 빌려 MT를 떠났는데요, 선배들이 따라간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떠난 여행이다보니 아무런 프로그램이나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방갈로에 도착과 동시에 아직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모두 취기가 돌기 시작하자 각자의 방식대로 프리스타일로 놀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약간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자 방갈로 한가운데 있는 난로에 석유를 붓고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약 반통정도 남은 석유통을 두껑이 덜닫힌 상태로 옆에 놓아두었는데, 한 친구(8531018)가 석유통을 난로쪽으로 엎지르면서 순식간에 방갈로 전체를 불쇼로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출입구쪽이 먼저 불이 붙어서 사실 어찌보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모두가 젊어서 그런지 몇몇 친구들 머리카락에 불이붙은 것 외에는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왔고 거대한 방갈로는 그날밤 엄청나게 큰 캠프화이어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대부분 신발과 옷가지들은 다 타서 (값비싼 일제 야시카(콘탁스)카메라) 다음날 오전에 교수님이 직접 옷가지들과 슬리퍼를 가지고 오시는 해프닝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이 사건은 사람이 순간적인 실수와 사고로 쉽게 죽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했습니다. 1994년성수대교붕괴사고(1993년 옥수동 기아자동차영업사원으로 일할당시 성수대교로 출퇴근도 하고 많이 다녔는데)1995년삼풍백화점붕괴사고등
세번째로 87년도 과학생회장시절 체루까스로 채워진 대학캠퍼스와 혼돈의 시간들. 과내활동을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2학년 과대표 3학년 과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캠퍼스분위기는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열사의죽음등으로 민주화열망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운동권학생은 아니었지만 총학생회와 연계해서 활동하다보니 결국은 데모데에 앞장서게되고 학과 과회장들이 함께 모여서 교문앞에서 단식농성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내의지와 관계없이 소위 운동권학생들과 어울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데모가 시작되고 전투경찰들이 교문앞을 애워싸기 시작하면 저는 죽을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데모대대열 가장 뒷쪽으로 숨어 들다가 결정적으로 체루탄 난사되고, 소위 하이바를 쓴 백골단들이 투입되면 미리 숨을곳을 파악한뒤 그쪽을 향해 달려가 숨는 비겁함을 보였습니다. 87년도 한해동안 학내민주화와 수업거부등으로 거의 수업도 들어가지를 않았고, 서울시청앞 광장까지 대규모의 집회에 참여하면서 뭔가 의미있는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에서도 전투경찰들의 다연발 체루탄 난사가 시작되면 살려고 도망다니기 바빴습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미로 같은 인생에 출구를 찾을수있을것이라는 기대는 어느순간 여지없이 무너져버렸고, 국가도 사회도 캠퍼스도 나자신도 마치 희뿌연 체루까스속에서 향방없이 헤매이는것처럼 아무런 기대를 가질수가 없었습니다.
1986년 8월31일 이태원 나이트클럽에서 밤새 친구들과 놀다가 다음날 새벽 2학기 개강날 미네르바동산위 벤치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곰곰히 생각한 것이 이 모순덩어리와 같은 세상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으며 과연 조물주가 계시다면 왜 이처럼 무의미하고, 답이 보이지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건지 깊은 의문가운데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벤치위에 반쯤 누워있는 저를 깨우듯이 성경공부를 권하였습니다. 새벽6시를 조금 지나고 있는 시간 아직 어둠이 채가시지도 않은 컴컴한 동산위에서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는 마치 자석에 끌리듯이 그가 권하는대로 도서관뒤 깡통으로 자리를 옮겨서 성경공부를 생애 처음으로 시작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창세기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과 혼돈과 공허가운데 하나님께서 이것저것 창조하시는 일들이 기록된 말씀을 들으면서 마치 이솝우화같은 얘기처럼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이 얘기가 정말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왜냐면 제맘이 당시 혼돈스럽고 공허했기에) 그리고 나도 모르게 종로5가 UBF교회에서 다시 보기로 약속하게되었습니다. 이것이 이곳 UBF모임과의 첫조우였습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동시에 약10여년동안을 깊은 내적갈등과 고뇌를 해야했던 방황하는 시간들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로 여기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계시는 우리 희영사모님의 끈질긴 심방과 박요나단목자님의 집요한 기도가 있었지만, 저는 쇠심줄보다 강하게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이곳 UBF모임가운데로 강력하게 붙잡아 두시기 위한 플랜들을 만들어가셨습니다.
첫째로 도박으로 곤경에 빠진자를 일방적으로 UBF장막생활로 인도하셨습니다. 87년말 과학생회장임기를 마칠즈음 청량리부터 학교주변까지 파친코 카지노도박장이 곳곳에 독버섯처럼 생겨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시간을 때우며 지내길 잘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도박중독에 빠져들면서 학교에서 받은 한학기 등록금에 해당하는 근로장학금을 하룻밤만에 다날리고는 양심상 집에 들어갈수가 없어서 집에다가는 학교근처에서 당분간 하숙을 한다고 거짓말을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UBF센터근처에서 학생들이 믿음을 배우기위해 장막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가고자 희영사모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실 여러정황상 믿음을 배우기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마치 지붕을 뚫는 사모님의 믿음으로 가까스로 장막에 들어갈수 있었고 이것을 꼬투리로해서 제가 10년후 주님께로 돌이키는데 중요한 신앙의 틀을 마련해주었습니다.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서의 방위군생활을 기점으로 장막을 떠난이후 저는 영업과 사업을 통해서 40이 되기전까지 약10억의 물질을 벌어 일생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생을 인죠이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이과정에서 가끔씩 여름수양회에 초청되어 참석을 하였는데, 수양회통해서 쉼을 얻고 한때 장막생활을하면서 맘가운데 그 순수한 기쁨과 행복감을 잠시라도 느끼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저는 세상쾌락과 세상욕심을 내려놓지 않았기에 죄에 가로막혀 주의 뜰안에서의 행복감을 전혀 맛볼수가 없었습니다. 늘 불안하고 알수없는 두려움가운데 술과 담배에 쩔어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없이 살고자했을 때 수많은 불륜의 죄악가운데 거함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죄성을 드러낼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생의 깊은 터널속을 달리고 있던 죄인을 구원하시기위해 두번째 플랜을 준비해두고 계셨습니다.
1997년IMF사태이후 저 또한 개인적으로 경제적어려움이 닥쳐오고 98년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것 같은 위기감가운데 있을 때 아주 절묘하게 박요나단목자님의 전화심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계기로 다시금 1:1성경공부를 시작하게되었고 약1년동안 심령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저는 어느날 자신의 인생을 깊이 돌아보았습니다. 죽음이 주는 깊은 허무의세력가운데 선택한 것이 후회없이 한번뿐인 인생 확실하게 즐기다가 가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살았을 때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가운데 있었을 때 다윗이 기록했던 시편32편,38편처럼 견딜수없는 고통으로 다음날 아침 깨어나는 것자체가 너무도 힘겨운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용서하시고 죄사함의 은혜를 허락해 주셨을 때 제 심령에 말할 수 없는 평강과 함께 새생명이 샘솟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죄사함의 은혜에 감격하여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심령에 한말씀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롬13:11-13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말라”
하나님은 때가되자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심으로 지금의 동역자를 만나게하시고 1999년1월19일 믿음의 결혼으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기까지의 30년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 하나님을 만난후의 30년은 포인트있게 진행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결혼을 축복하사 믿음안에 두자녀 루시와 바울이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자녀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큰 즐거움이요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자녀들이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기간을 지나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가운데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때마다 지켜주시고 감당할만한 시련가운데 죄인의 믿음을 성장시켜 가셨습니다. 사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고통스런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나와서 볼 때 이 모든 것들이 저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적 영양분과도 같음을 깨닫게됩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룬지 이제 27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루시가 이제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고 하나님의 때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주실줄 믿습니다. 저와 동역자가 매일 잠들기전 합심기도로 이 딸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황하던 저를 약10년을 참아주시고 감당해주셨듯이 이제 방황한지 10년이 넘어가는 이 딸을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때에 강권적으로 역사하사 저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변화의 역사를 이루어 주심으로 모든 삶이 간증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방황하는 누나로 인하여 군제대이후 똑바르게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 바울이가 계속해서 주의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토록 인도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2장 주의 은택으로 한해를 관 씌우시니 (5-13)
5절로8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땅끝에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이 되는 것과 저녁이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다윗은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실뿐만 아니라 놀라운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주권자되심으로 그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고 권능으로 띠를 띠십니다. 바다의 성난파도를 잠잠케하시고 민족들이 소란 피울때도 그것을 다스리십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인간사회의 혼란과 전쟁조차도 하나님의 통치아래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8절하반절 주께서부터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이 말씀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통치아래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게될 때 매일 일상의 삶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참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일상의 삶들은 어떠하십니까? 다윗이 얘기한것처럼 아침을 깨울 때 기쁨이 넘칩니까? 저녁 잠들기전까지 행복하십니까? 이시간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아래 진정으로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이제 다윗은 시편65편 마지막부분인 9절로13절말씀에서 년사에 풍성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9,10절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냥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마다 지금 이시간까지 세상을 돌보고 계십니다. 지속적으로 자연을 공급하시고 심히 윤택케하십니다. 농사를 짓기위해서는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야하고 땅이 기름져야합니다. 인간의 노력과 함께 결국 풍요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있습니다.
이제 다윗은 시편의 말미를 아주 시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11~13절말씀을 읽겠습니다. “주의 은택으로 한해를 관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삶전체를 채우는 기쁨과 만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가 60평생을 살아보니 물질이 풍성하게 많으면 좋겠지만 Too much~ 너무 많으면 지난주 메시지에 나온것처럼 돈이 하나님을 대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꼭 필요할때마다 채워주시는 것이 가장 베스트임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 삶가운데 여러 사업과 영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다 막으심으로 당시에는 조금 서운한 맘도 있었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이켜볼 때 저를 저보다 더 잘아시는 주님께서 가장 합당하게 인도해 가고 계심을 어느순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꼭 필요한 물질을 허락해주셨고 적절한 잡을 얻게하심으로 스트레스없이 물질자립을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지난7년간은 여행을 좋아하는 저의 적성에 딱맞는 영업용승합택시업무를 통해서 꾸준한 수입을 얻게하시고 늘 새벽을 깨워 새벽기도와 함께 설래이는 마음으로 오늘하루의 드라이브 여행지를 기대하며 출근케하셨습니다. 물론 업무를 통한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때마다 사고로부터 지켜주시고 여러 힘든 상황들가운데서도 평강으로 인도해 오셨습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볼때도 결혼후 지금까지 지내온 집들중에서 가장 크고 공기 좋은 배봉산 중턱에위치한 시립대 근처로 이사하게 하시고 빠듯한 생활경제가운데서도 필요를 따라 풍성하게 먹이시고 적절한 휴가와 여행을 통한 힐링 또한 허락해주셨습니다.
저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은 지금 살고있는 집 전세자금외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아마 제 연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노후를 보낼까 걱정,근심이 나날이 늘어갈것입니다. 물론 저도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전혀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사후보장 즉 영생을 주신 것처럼 노후보장 또한 이미 준비하고 계실것을 믿습니다.
이시간 주의 은택으로 한해를 관씌우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제가 늘 기쁨이 충만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운데 주위에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고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주의종으로 일생 살아갈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시편65편에서 다윗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며 삶의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전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 아름다운 시적인 표현으로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삶 전반에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찬양하며 늘 감사가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며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 때 우리의 인생은 놀랍도록 풍성해지고 늘 기쁨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시간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처럼 감사가 충만한 삶을 끝까지 살아갈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같이 요절말씀 읽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시작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이시간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전인생을 책임져주시고 함께 동행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늘 신뢰하며 감사,찬양드리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시간을 감사드리며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