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5 고린도전서 9강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 

 

 

말씀/ 고린도전서 11:2-34

요절/ 고린도전서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세계적인 기업을 보면 그 기업의 철학이 있다고 해요. 애플의 경우 그 철학이 뭐냐면 “사용자 경험 중심, 단순함(simplicity), 통합 생태계”라고 합니다. 삼성은 “기술 기반의 혁신, 생산력 확장성, 고객 기대 충족” - 삼성전자 AS 서비스 센터 들어가면 들어가자 마자 굉장히 상냥하게 인사하고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글은 “정보 접근성 확대, 개방성, 데이터 기반 혁신”이라고 합니다. 

 

그중 애플의 기업 정신, 철학을 좀 살펴보면 많은 부분 스티브 잡스에게서 나왔는데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해요. “Innovation is saying no to 1,000 things.” 혁신이란 뭐냐면 하지 말아야 할 1,000가지에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다보면 꼭 해야 할 것을 찾을 수 있고 거기에 집중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겠죠. 

 

또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비자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손에 쥐어주고 이것이 너가 원하는 그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는 그러한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애플은 기술개발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그 시대 흐름을 읽고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까 하는 것을 발견하는 그러한 종합적 안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교회에 나오면서 교회는 어떤 곳인지 어떤 비전과 철학이 있는 곳인지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르신다면 그러한 것을 깨닫고 발견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 내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여자 성도가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할지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고, 두 번째 애찬과 성만찬 때 고린도 교회에 일어났던 차별과 이로인한 마음의 상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6절인데 먼저 자신을 한번 보겠습니다. 사진은 카톨릭 미사 장면인데 위에 쓴 천을 뭐라고 하냐면 미사보라고 합니다. 다음 사진 보겠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를 제외한 정교회에서 여자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머리에 쓰는 스카프같은 천입니다. 사도 바울 시대 때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대부분 출신지가 세 군대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스, 로마, 유대 팔레스타인 - 그런데 이 세군데 다 공통점 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여자가 공공 장소에 올 때 머리에 수건같은 것을 쓰거나 머리를 가리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고 해요. 이것은 아마 여인의 정숙함을 상징하겠죠. 그래서 고린도 교회도 자연스럽게, 고린도 교회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때 여자 성도들이 예배 때 머리에 수건을 쓰거나 가리는 그런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 고린도 교회 내에 특히 여자 성도 가운데 “우리가 복음을 믿고 주 안에서 모든 장벽이 다 무너지고 그렇죠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 율법의 장벽이 다 무너지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의 장벽도 무너져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우리만 이렇게 머리에 뭔가 뒤집어 쓰고 예배에 나와야 하느냐? 우리도 남자들처럼 안쓰고 싶다.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주장하는 여자 성도들로 인해서 바울이 답변하는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여자가 머리를 덮어 가리지 않으려면 깎아 버려야 합니다.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창피한 일이라면, 덮어 가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거는 거의 협박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바울이 “예배 때 수건을 안덮어쓰고 예배에 나오겠다는 여자 성도가 있다고? 그러면 그런 여자는 머리를 사진을 한번 볼까요, 머리를 이렇게 스포츠로 깎으라는 것입니다. 멋있어보입니까? 멋있어보일 수도 있지만 바울 시대 때 여자가 이렇게 머리를 스포츠로 깎는 것은 굉장한 수치죠. 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 여자들 중에 독일 남성 장교랑 놀아난 프랑스 여자들을 전쟁 후에 이렇게 머리를 깎았어요. 수치를 준 것이죠. 이거는 사도 바울 시대 때 더했겠죠. 여자가 머리를 이렇게 짧게 잘랐다는 것은 수치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것이 “이게 챙피해? 그러면 수건 덮어써.” 거의 협박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울은 어때요? 전통에 대해 굉장히 개혁적이고 우리가 매여 있는 전통에 대해 그거는 벗어버려도 된다 - 거의 그런 쪽이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놀랄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어떤 분들은 바울이 은근히 보수적이다, 그리고 은근히 꼰대다 - 그렇게 말하는 성경학자들도 실제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문제를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 바울이 이 문제만큼은 보수적이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까? 아마 아닐 것입니다. 바울의 논리를 한번 따라보겠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3그런데 나는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 문제가 교회가 교회의 근간이 되는 기본질서, 기초에 관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 헌법이 어떤 정신 위에 세워졌는지 중고등학교 다니실 때 다 배우셨죠? 미국 헌법이 어떤 정신 위에 세워졌습니까? 물론 여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미국의 이른바 Founding fathers - 미국의 초대 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어떤 급진적인 사상이나 생각이 미국 전체를 흔들지 않도록 - 그것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것 중 하나라고 해요. 그래서 예를 들면 국회도 상원과 하원을 따로 만들어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원은 이제 25세 청년부터 시작해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미국이 이렇게 변해야 한다 하는 새로운 생각을 가진 케네디 대통령같은 그런 사람이 얼마든지 정치에 진출해서 자신의 소신과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개방을 해 놓았어요. 반면에 상원은 30세 이상부터 뭐랄까 인생의 경륜이 있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균형을 잡도록 한 것이죠. 비단 국회 뿐만 아니라 미국의 헌법을 보면 모든 분야에서 급진적인 생각이 나라를 흔들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원같은 경우 물론 상원에도 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위원회에는 90세 이상 연세드신 분들이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뭐를 하냐면 젊은이들이 만든 개혁적인 법안에 브레이크를 거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해요.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맨날 브레이크만 거느냐 절대 그것은 아닙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케네디같은 젊은 정치인이 나와서 얼마든지 자기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포인트가 뭐냐면 그만큼 미국 헌법을 만든 제정자들이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앞으로 100년, 200년, 300년을 갈 때 정말 이 나라를 지켜줄 수 있는, 자유롭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지만 넘어서는 안되는 근간, 그 질서가 무엇일까 거기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자 성도가 머리에 수건을 쓸 것인가 쓰지 않아도 될 것인가 하는 이 문제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지금 만약 여자 성도들이 그냥 정말 몰라서 “바울 목자님, 복음은 모든 장벽을 없애고 차별을 없애는 것인데 남자 성도와 여자 성도 사이에 차별을 둡니까? 우리도 안쓰면 안되나요?” 이렇게 몰라서 질문하는 것이었으면 바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그들이 말하는 의도가 굉장히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자 성도들이 이렇게 말하는 의도가 뭐냐면 “복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구별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점점 더 신령한 존재가 되고 어떤 남자와 여자의 몸의 육정으로부터 자유케 되고 신령한 존재가 되어 점점 천사처럼 되는 것 아니냐? 몸의 욕구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니고 고린도 여자 성도들의 생각에 기초해서 복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이제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 했기 때문에, 그 의도를 읽었기 때문에 이렇게 강경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예가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장희빈 아시죠? 장희빈이 누구냐면 조선 시대 때 숙종, 숙종이 인현왕후가 15살, 자기가 21살 때 결혼을 했는데 자녀가 없었어요. 그런데 숙종이 장희빈에 완전히 빠진 것입니다. 완전히 매료되어 장희빈이 아들을 낳았어요. 그때 숙종의 마음 가운데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왕후로, 왕비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신하들을 다 모아놓고 “요즘 인현왕후가 자기는 아들이 없는데 장희빈은 아들을 낳아서 시기하고 있다.” 이런 말을 갑자기 했어요. 그러니까 그 의도를 파악한 신하들이 격렬한 항소문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어떤 신하들은 고문을 당하고 죽기도 했습니다. 신하들은 그 의도가 보이는거죠. 그리고 그 의도가 그들이 신봉하는 유교 질서를 기초로 볼 때 매우 잘되었다, 첩을 세우기 위해서 본처를 내쫓고 첩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이것은 왕이 해서는 안될 짓이다 - 그래서 목숨을 걸고 반대를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 바울의 입장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들의 주장을 방치하거나 받아들였다가 이들의 주장이 마치 성경적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 제가 얼마 전에 한번 소개해드렸습니다만 한 일본 여성 작가가 쓴 소설에서 남성과 여성, 가정의 개념이 해체된 미래 사회에 대한 소설이 있습니다. 그 소설을 보면 각자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요. 왜 꼭 아이를 가정에서 낳아야 하느냐, 국가에서 관리해주면 안되냐 - 그래서 그 마을의 모든 사람이 이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 같이 키우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원하면 발전된 의료 기술을 이용해 인공 자궁을 자기 몸 안에 만들어 임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남자가 아이를 임신해 출산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 키울지도 선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정의 개념이 완전히 해체됩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개념이 해체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미래에 정말 이런 사회가 올 수 있겠다 -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잖아요. 남성과 여성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사회가 정말 올 수 있겠다 생각이 들고 어떤 사람들은 구토 증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포인트가 뭐냐면 “여러분,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수많은 기존의 전통과 질서를 깨도 되고 그로부터 자유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절대로 깨서는 안되는 근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 만드신 남성과 여성의 구별 - 위 아래가 있다는 것은 아니에요 -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있다. 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될 가정이라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가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수건을 써야 하느냐, 안써도 되느냐 하는 사소한 전통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성과 여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매우 강경하게 “그리스도도 봐라,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아들로서 순종하지 않으셨느냐? 질서 가운데 행하지 않으셨느냐” 말합니다. 그래서 남자 여자 사이에 위아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넘어서는 안된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어떤 분들은 예수님도 천국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낳는 것이 더 이상 없다고 하지 않으셨느냐 묻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국에서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요. 지금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복음을 영접하고 이 땅에 사는 이 세상의 삶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차이, 또 가정 - 이것은 절대로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를 보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교회 내에서 성만찬 때 일어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초대 교회 때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매우 높은 가능성으로 1부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난 직후 2부 순서로 이른바 agape meal이라고 사랑의 만찬이 있었고 3부 순서라기보다는 그 식사가 끝남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만찬이 있었습니다. 성만찬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살이 찢기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것을 기념해서 예수님의 살을, 사실은 떡을 먹는 것인데, 예수님의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흘린 피다 이렇게 기념하고 포도주를 마시는 성만찬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린도 교회 내에 이런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의 집이었거든요. 그 중에서 재정적인 형편이 넉넉하고 집이 큰 성도의 집에서 예배와 성만찬을 했는데 문제는 그 집의 구조가 주방에 있는 테이블에 많이 사람이 앉을 수 없대요. 주방에 있는 테이블에 한 열명 정도, 그 다음에 안뜰에 30~40명 정도, 그 외에 집이 크면 다른 방에서 여러 테이블을 놓아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 고린도 교회 지역의 사회적 관습이랄까 전통이 뭐냐면 절대로 클라스가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식사를 안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장교와 사병이 같이 식사하나요? 안한다고요. 차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에도 보면 12.12 군사 쿠데타 때 별들이 따로 한쪽 식당에 모여서 식사하면서 모의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장성은 장성끼리, 사병은 사병끼리 훈련 끝나고 봉지에 라면 끓여먹을지 말지를 의논하고 장성은 쿠데타를 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따로 모여야죠. 장교들은 비밀이 새어나가면 안되니까, 사병은 장교몰래 해야 하니까. 얼마 전에 삼성 이재용 회장이 지하 구내식당에 가서 직원들과 함께 줄서서 식사한 것이 뉴스에 나왔잖아요. 뉴스에 나올만큼 특별한 일입니다. 회장은 다른 회사의 회장과 만나서 식사해야지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취미도 공통점이 있으니까 대화가 될 것 아니에요. 

 

오늘날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도 바울 시대 때에는 이것이 더 철저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다른 클라스 사람과 함께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안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회가 이런 고린도 지역의 사회적 습관과 전통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를 할 때 주방에 있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목사님, 장로님, 또 장로님 사모님, 또 그 교회의 유력자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안뜰에는 그 외에 사람들, 기타 나머지들이 식사했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식사의 메뉴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급 인사들은 1등급 불고기 스테이크에다 최고급 프랑스산 포도주를 마셨고 뜰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싸온 김밥 도시락에 포도주대신 포도주스를 마셨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저녁 근무하느라 늦게 온 사람은 아예 쫄쫄 굶은 채 성만찬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겼냐면 설교자가 성만찬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전할 때 한쪽에서 코를 드르렁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고보니 부자 중 한 사람이 식사 때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 취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배를 쫄쫄 굶은 야간 근무를 한 간호사 성도가 상처를 받았습니다. 부자는 성만찬 중 취해서 지금 뭐하는거여 이러고 있고 가난한 성도는 배가 고파서 성만찬에 집중을 못하는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면, “봐라.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셨느냐? 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서 그렇게 죽게 하셨냐? 그것은 물론 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셨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어떠한 차별도 없는, 차별로 인한 상처가 없는, 주 안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같은 형제 자매인 교회를 세우려고, 교회를 낳으려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하는 짓거리가 무엇이냐? 주 안에서 하나됨을 확인하는 사랑의 만찬을 하면서 오히려 상처를 주고 차별 행위를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작은 죄가 아니다. 너희 중에 아픈 자, 병든 자, 심지어 죽은 자가 많지 않느냐? 그것은 너희가 이 성만찬을 잘못 드렸기 때문이다. 성만찬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사도 바울은 여자가 공적인 장소에 가면 반드시 머리를 수건으로 덮어야 한다는 전통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절대로 다른 클라스의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지 않는다는 고린도 지역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과 반대의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어떤 전통은 거부하고 어떤 전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러한 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와 그 의도가 과연 성경적인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언어학자가 말했어요 - “모든 말에는 그 말한 사람의 의도가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아무 의도 없이 말했는데.” 그런데 사실은 - 아무 의도 없이 말한 - 바로 그것이 의도입니다. 아무 의도없이 말해야겠다고 의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말을 할 때 그 말을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재판할 때 재판이라는 것은 의사못지 않게 한 사람의 생명과 인생을 다루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재판할 때 판사가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가 말하는 사람의 의도라고 합니다. 지금 어떤 생각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저 말을 하는가 - 이것이 판결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해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뭔가를 말할 때 그 의도를 살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 자체만 가지고 생각하면 안되고 그 의도를 살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 의도가 성경적인지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 진리에 부합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주 안에서 차별이 없이 한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곳입니다. 우리 종로7부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메시지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2023.03.27 559
146 2025 고린도전서 11강 "사랑은..." (고전 13장) Elijah 2025.12.08 8
145 2025 고린도전서 10강 "한 몸, 한 성령" (고전 12장) Elijah 2025.12.01 21
» 2025 고린도전서 9강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 (고전 11:2-34) Elijah 2025.11.23 18
143 2025 추수감사절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시 65편) - 이어거스틴 Elijah 2025.11.16 32
142 2025 고린도전서 8강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1-11:1) Elijah 2025.11.10 35
141 2025 고린도전서 7강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고전 8,9장) Elijah 2025.11.03 53
140 2025 고린도전서 6강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고전 7장) Elijah 2025.10.27 66
139 2025 고린도전서 5강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5,6장) Elijah 2025.10.20 71
138 2025 고린도전서 4강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 (고전 4장) Elijah 2025.10.13 54
137 2025 고린도전서 3강 "지혜로운 건축자" (고전 3장) Elijah 2025.10.05 95
136 2025 고린도전서 2강 "성령으로 보이셨으니" (고전 2장) Elijah 2025.09.29 116
135 2025 고린도전서 1강 "십자가의 도" (고전 1장) Elijah 2025.09.22 109
134 2025 잠언 6강 "나를 간절히 찾는 자" (잠 8,9장) Elijah 2025.09.16 109
133 2025 잠언 5강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라" (잠 5~7장) Elijah 2025.09.08 198
132 2025 잠언 4강 "네 마음을 지키라" (잠 4장) Elijah 2025.09.01 130
131 2025 잠언 3강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잠 3장) Elijah 2025.08.25 206
130 2025 잠언 2강 "감추어진 보배" (잠 1:20-2:22) Elijah 2025.08.22 174
129 2025 잠언 1강 "지식의 근본 (앎의 시작)" (잠 1:1-19) Elijah 2025.08.13 149
128 2025 출애굽기 20강 "성막에 충만한 여호와의 영광" (출 40장) Elijah 2025.08.03 172
127 2025 출애굽기 19강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출 35-39장) Elijah 2025.07.28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