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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고린도전서 10강 

 

 

한 몸, 한 성령 

 

 

고린도전서 12:1-31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면 자기가 어떤 것을 굉장히 잘 하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일하는 삶의 현장에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그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는, 비교되는 그러한 아픔과 좌절을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한다고 해요. 이 용어는 세계적인 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풀 네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이잖아요, 그 아마데우스에서 나온 말인데, 아마데우스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 사람이 연극 아마데우스를 썼는데 이 연극은 무대가 열리면서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 내가 모짜르트를 죽였어!” 

 

이 연극은 추후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를 보면 모짜르트는 황제 앞에서 작곡가인 살리에리가 작곡한 곡을 연주합니다. 연주하다가 “후반부가 너무 반복되고 지루한데 이렇게 고치면 좋지 않아요? 살리에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서 모차르트 특유의 웃음을 짓습니다. “하하하하” 살리에리는 조롱당한 것으로 느꼈습니다. 나중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위대한 곡의 악보지 초안을 보았는데 놀라운 사실은 거기에 수정한 흔적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작곡하면 수정을 엄청나게 하는데, 지웠다가 쓰고, 찍 긋고 하는데 그러한 흔적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마치 누군가 보여준 것을 그대로 베껴 쓴 듯한 깨끗한 악보지를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살리에리는 신이 이렇게 건방지고 무례한 모차르트에게는 이러한 재능을 주시고 나처럼 겸손하게 또 열심히 성실하게 작곡한 자기에는 상대적으로 재능을 적게 주신 것에 분노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결국 그는 신이 선택한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것은 실화가 아니고 연극입니다. 당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런 소문을 근거로 만든 연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리에리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이 증후군으로 인해서 시기심과 질투심, 분노로 가득찬 인생을 살고 결국은 자신의 인생이 파멸로 끝이 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귀한 교훈을 줍니다.

 

1-3절을 보십시오. 1형제자매 여러분,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모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2아시다시피, 여러분이 다른 민족 사람으로 있었을 때에 여러분은 말 못 하는 우상들한테로, 그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녔습니다. 3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았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고린도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과거 그들이 말 못하는 우상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녔다고 말하죠. 이것은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익숙한 고린도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 어떤 선택권도 없이, 결정권도 없이 그대로 끌려다녔다는 것이죠. 

 

오늘날 일본에 가보면 새해가 되면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일본은 새해가 되면 전부 다 신사로 갑니다. 신사 앞에 고양이같은 것들 있는 곳에 가서 함에 동전을 던져넣고 양손바닥을 탁 치면서 “요오니(~하기를)” 하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그런 청년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또 사진을 보면 밀물만 되면 바닷물에 잠기는 신사가 있어요. 이런 곳들이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귀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사람들도 지난 번에 배웠던 것처럼 우상의 신전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드리는 예배가 끝나고 그곳에서 식사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에요. 그 자리에 참석해야지 뉴스를 알려주는 방송도 없던 시대에 세계 소식도 들을 수 있고 다양한 정계나, 재계, 문화계 등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할 수도 있는 기회가 됩니다. 빠질 수 없는 하나의 문화적 장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은 어짜피 없는 것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고, 식사하면서 사교활동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전서 10장에서 그러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아무튼 과거 귀신과 우상을 섬기던 그들이 이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한 것은 그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스스로 힘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한 것은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주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7절을 보겠습니다. 4은혜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님이십니다. 5섬김의 임무는 여러 가지이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일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일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게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7저마다에게 성령님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의 이로움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흐름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시죠? 그렇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빛을 비추어 주셨고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맞죠? 바울은 그렇다면 그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복음에 대한 깨달음을 주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영접할 때 - 우리 부모님들 자녀들이 대학갈 때 선물을 주잖아요. 주로 많이 주는 선물이 아이패드, 노트북 등을 선물로 주죠. - 이와같이 성령께서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이 놀라운 일을 기념해서, 하늘에서 파티를 하고 여러분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 선물은 다양해서 아이패드, 최신 휴대폰, 최신 컴퓨터 - 그런데 보니까 형편이 넉넉한 부모는 차를 사주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님이 형편이 부족해서 구형 휴대폰을 사주는 겁니다. 그러면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죠. 그런데 이처럼 성령께서 선물을 주시는데 똑같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차별이 있어 보이는 그러한 것을 주신다는 것이죠. 

 

우리가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개역개정에서는 ‘은사’라고 번역합니다. 은사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똑같은 말이죠. 은사와 재능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재능은 타고난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만 되어도 재능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어떤 아이는 말을 잘 해요. 이런 꼬마가 어떻게 이렇게 말을 조리있게 잘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잘 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리거나 로보트를 조립하거나 어떤 작품을 만들 때 굉장히 섬세하게 잘 만드는 그러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컴퓨터에 놀라운 재능을 보입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재능들이 벌써 초등학교 1학년, 2학년만 되어도 두드러지게 차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재능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번 여름 수양회 때 우리 학교 외대 선배님이신 지금은 성균관대 사역자이신 이스펄전 목자님 특강 들었잖아요. 그 아들 모세가 굉장히 방황을 했습니다. 밥먹듯이 가출을 하고 연락이 안되고. 그래서 이 부모님이 너무나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오랜 시간을 거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모세가 자기 안에 있는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그 재능은 노래하는 재능, 성악의 재능이었습니다. 이 재능을 발견한 후 모세의 삶은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악의 가사가 주로 스페인어, 라틴어, 이탈리어잖아요. 생전 영어 단어 하나 안외우던 애가, 공부하기 싫어 가출을 밥먹듯 하던 애가 시간만 나면 그 가사를 암송하는 것입니다. 성악을 하려고 이탈리어 가사를 암송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재능을 발견한 모세의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했고 지금은 독일에 있는 음대에서 동양인 중에 유일한 학생으로서 열심히 유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재능으로 직업이 아니더라도 그 재능으로 뭔가 발휘하면서 살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게 지어졌어요. 이것은 진실입니다. 내 안에 재능을 발견한 순간 가장 행복해요. 여러분은 재능을 발견하셨습니까? 우리 재영 목자님은 어떤 재능을 발견하셨어요? 최근 특송을 부르면서 노래를 잘하는 재능을 발견하셨다고요?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면 노래부를 때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타고난 재능과 은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재능과 은사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타고난 재능과 성령께서 내가 예수님 믿을 때 주신 은혜의 선물, 은사와는 별 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없고 별로 없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8-11절을 보겠습니다.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님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며,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님을 따라서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9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님 안에서 믿음을 주시며,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님 안에서 병 고치는 은혜의 선물을 주십니다. 10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며,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을 주십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하도록 해 주십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신비한 언어들을 말하게 하시며,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신비한 언어들을 풀이하게 하십니다. 11이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저마다에게 제각각 나누어 주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은혜의 선물, 은사라고 하겠습니다. 은사 중에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입니다. 이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는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은사입니다. 특히 저같은 설교자, 성경교사, 분반 인도자에게 굉장히 중요한 은사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가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지식의 은사는 성경 본문의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쳐주는 은사입니다. 지식의 은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식의 은사가 부족해서 성경 본문을 엉뚱하게 잘못 해석하면 잘못하면 이단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의 은사가 중요한데 문제는 지혜의 부족하면, 지식의 은사에 치우치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이 성경 본문은 이런 뜻이다 굉장히 정확하게 잘 가르쳐 주었는데 교회와서 1시간 동안 그것을 듣고나서 좌절감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에는 엄청난 실존의 문제, 삶의 어려움이 있는데 성경본문의 뜻이 이거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 하는 측면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좌절감을 느끼는 그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정말로 필요합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실제적인 문제, 실존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존의 문제를 어떻게 내가 소화하고 이해하고 어떤 삶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 지혜의 은사가 결정적인, 마치 배의 키처럼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을 보면 대개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지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설교자들은 이 본문은 이런 뜻이다 하는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가르치고 말겠다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그냥 졸든지 말든지 가르칩니다. 반면에 너무 지혜의 말씀에 빠진 사람들은 가끔은 본문과 아무 상관없이 자기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여러분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자가 누구죠? 김대중 전대통령, 한강 작가 맞습니다. 각각 노벨 평화상, 노벨 문학상이죠. 그런데 과학 분야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본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인지 아십니까? 물리학에서 12명, 화학에서 8명, 생리의학에서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어서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잖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상으로는, 발표되는 신문에 나오는 수치상으로는 우리나라가 굉장히 잘 나갑니다. 하지만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지 아십니까? 휴대폰에 부품을 제공하는 일본으로 갑니다. 일본은 오랜 세월 당장 수익이 되지 않더라도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결실을 지금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내 삶에 당장 도움이 되는 지혜의 말씀이 필요하지만 기초 과학과도 같은 지식의 말씀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성경 66권이 각각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머리속에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 번 우리 출애굽기 배웠는데 출애굽기 말씀이 머리 속에 정리되어 있습니까? 출애굽기 말씀의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출애굽기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낮고 낮은 광야와 같은 사막의 삶, 거칠고 황량한 사막과 같은 나의 삶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나와 함께, 거친 그 자리에 나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출애굽기 공부할 때 이렇게 정리했잖아요. 이렇게 딱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고린도 전서도 끝나면 딱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지식과 지혜의 말씀에 있어서 그러한 균형잡힌 종로7부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제가 균형잡힌 설교자가 될 수 있도록, 너무 지혜에 치우쳐서 사람들을 즐거움을 주지만 알맹이가 없는, 또 너무 지식에 치우쳐서 사람들을 수면의 세계로 인도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믿음의 은사가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믿음이 있죠. 믿음없는 신자가 어디 있어요? 하지만 은사 측면에서 특별한 믿음이 있습니다. 체코의 신한나 선교사님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젊은 날 남편이 소천하셨습니다. 이때 굉장히 절망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욥기 말씀을 주셨습니다. 욥기 말씀을 통해서 젊은 날 남편을 데려가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도록 도우시고 그때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이 믿음의 은사였습니다. 당시 전요한 목자님이 남편이 소천했으니 선교지에서 철수하고 귀국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때 이 분이 믿음의 은사를 받으시고 “내가 믿음으로 할 수 있다.” 말하고 이후 푸드 사업 통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고 믿음으로 체코 선교에 도전해서 믿음의 조상을 세우고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지난 가을 수양회에 전체 20여명이 참석하는데 말씀강사 3명, 대표소감강사 12명을 세웠습니다. 말씀하나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다 아는데 대표소감 준비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10페이지 자기 인생을 쓰고 5페이지고 줄이고 3페이지로 줄이고 최종본을 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여름수양회를 하는데 청년팀들 전원 대표소감 강사, 말씀강사 세우고 우리 사모님들 전원 대표소감 강사 세우고 - 저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명 한명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요. 하라고 하면 다들 정중하게 거절할 것 같아요. 그런데 신한나 선교사님은 그렇게 했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언제 한번 초청해서 그 믿음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울 당시에는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유의 은사, 치유의 은사, 병이 나면 고쳐주는 은사를 받은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요즘은 왜 이렇게 치유의 은사, 신유의 은사가 초대 교회 때처럼 많이 나타나지 않은가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예가 있다고 해요. 어떤 분이 의학이 발전하지 않은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갔어요. 이분이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치유의 은사가 없었는데 병원이 없는 아프리카로 가니까 하나님이 치유의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이 아플 때 안수하고 기도해주면 낫는 신유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까 신유의 은사가 사라졌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병원이 없잖아요. 그래서 교회 내에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신유의 은사, 치유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병원이 많은 요즘은 아플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한테 기도하지 말고 병원으로 가거라 - 그러시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여전히 현대에도 아프면 우리가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치유의 은사를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방언의 은사가 오늘날은 고린도 교회처럼 많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방언의 은사를 통해서 아 정말 영적인 세계가 있구나, 신령한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받아들인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은사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도 방언의 은사가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은사가 필요했고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도 있었다 -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12몸이 하나이지만 몸에는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의 부분들이 많다고 해도 모두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13우리는 모두 한 성령님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아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노예나 자유로운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님을 받아 마시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몸의 비유를 하는데, 몸의 비유를 하는 까닭은 고린도 교회 내에 자기가 받은 은사가 최고다 라고 자랑하는, 그리고 상대적으로 상대방이 받은 은사를 하찮게 생각하는 그러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 최고로 인정받는 은사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지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천사처럼 말하는 방언의 은사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두 부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쪽 부류는 사람들이 좀 스마트하고 지식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부류, 다른 쪽 부류는 방언을 최고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 고린도 지역의 철학과 연관이 있는데 철학자들은 남들이 모르는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했잖아요. 또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을 보면 일반 사람과 다른 이데아의 존재, 이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추구했잖아요.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남들이 모르는 지식, 남들보다 한발 앞선 정보 - 그것을 주식에 투자하거나 해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잖아요. 또 남들과 뭔가 차원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 멋진 외모, 멋진 분위기로 인해서 인정을 받을 수가 있죠. 

 

바울은 이와같이 각자의 은사를 마치 내 것인냥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내에 생기는 그러한 갈등과 분열, 파벌 문제, 상처받는 문제, 자기 자랑하는 문제를 돕기 위해 몸의 비유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14-17절을 보면 우리 몸은 - 개역개정을 보면 지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 여러 지체로 이루어졌죠. 그래서 몸은 하나인데 발이 있고 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이 나는 손이 아니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하지 않아 라고 말한다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21절을 보십시오.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몸에 여러 부분을 두셨습니다. 그것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몸에 두셨습니다. 19모든 것이 한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그러나 이제, 몸의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한 몸을 이룹니다. 21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난 네가 필요 없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머리도 두 발에게 말하기를 “난 너희가 필요 없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뇌라고 생각하죠.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과학 상식을 동원해본다면 뇌는 우리 몸의 각 부분들이 보내 온 정보를 가지고 그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다시 몸의 각 부분에게 명령을 내리는 부분이 뇌잖아요. 눈이 사물을 보잖아요. 그런데 눈은 마치 캄캄한, 우리 옛날에 캄캄한 화면에 명령어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처럼, 눈은 어떤 정보만을 모아서 뇌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눈이 본다고 생각하는데 눈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그저 시각 정보를 신경망을 통해서 뇌에 전달하는 거예요. 그러면 뇌가 그 정보를 이미지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뇌가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데 음주운전을 한 차가 차를 몰고 오는 겁니다. 그때 어떻게 그 위험을 감지합니까? 먼저 귀가 차의 엔진소리, 바퀴소리를 듣죠. 그래서 엔진 소리가 나지 않는 전기차가 위험합니다. 그래서 요즘 전기 차는 저속으로 운전할 때 안전을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낸다고 해요. 아무튼 차가 오고 있는데 귀가 소리를 감지합니다. 그러면 고개를 돌려 봅니다. 그러면 눈이 보겠죠. 그래서 정보를 뇌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뇌가 위험을 감지하고 아들레나닌이니 하여간 온갖 긴급상황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분비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심장에게 심장박동수를 2배로 늘려라, 그래서 거기에서 전달된 포도당 에너지를 가지고 근육에서 최대 출력으로 힘을 내서 그 자리를 피해라 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맨마지막 순간 명령을 하달받은 발이 평소받은 그 상처와 아픔이 그때 터졌습니다. 무좀 걸렸다고 그렇게 나를 무시하던 그 놈의 코, 그리고 빨갛고 진물난다고 꼴보기 싫어하던 눈! 복수할 기회가 왔다. 그래서 명령거부 - 너나 가라, 잘난 척한 눈 너가 가라.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복수한 발도 사망하고 평소 상처준 눈과 코도 다 사망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안되겠죠. 

 

22-26절을 보십시오. 22오히려 몸에서 더 약해 보이는 부분들이 더더욱 꼭 있어야 합니다. 23우리 생각에 몸에서 덜 훌륭해 보이는 것들, 이것들을 우리가 더 넘치는 영광으로 둘러서 감싸 줍니다. 우리 몸의 볼품없는 부분들이 더 넘치도록 품격 있게 꾸며집니다. 24우리 몸의 보기 좋은 부분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화롭게 몸을 만드셨는데, 모자라는 부분에 더 넘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25그리하여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셨으며, 여러 부분들이 똑같이 서로를 위해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26그래서 몸의 한 부분이 고통을 겪으면, 모든 부분이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부분이 영광을 받으면, 모든 부분이 함께 기뻐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몸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부분이 어디입니까? 우리 몸을 상체와 하체로 구별해서 본다면 주로 상체에 아름다운 것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마치 뉴욕, 서울에 다 몰려있는 것처럼 상체, 그 중에서도 머리에 아름다운 것들이 몰려있습니다. 우리 여자분들, 머리카락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머리카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인하고 싶다면 머리를 한번 밀어보세요. 미장원에서 예쁘게 가다듬은 것하고 머리가 없는 것 하고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머리가 얼마나 소중하냐면 요리하다가 머리가 불에 그슬리거나 미장원에서 실패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조금만 기다리면 되요. 그러면 다시 머리가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이 머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그리고 눈, 보는 거는 좀 못봐도 되요. 안경 쓰거나 콘택트렌즈 끼면 됩니다. 눈이 예쁘면 매력적입니다. 이것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인배 목자님 눈이 참 잘 생겼습니다. 우리 남자분들도 얼굴이 지적으로 보이면 얼마나 멋입니까! 그래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백화점같은 곳에 가서 내 얼굴을 가려줄 그런 거 없어요. 추우니까 감기 안 걸릴려고 마스크 하는 것은 있지만 내 얼굴을 보완하기 위해서 얼굴을 가려주는 것은 없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영광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자매님들 어디 있습니까? 다이어트 실패하서 똥 튀어나온 배, 그 다음에 망가진 몸매 - 이것은 영광스럽게 가려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백화점 가서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배를 커버해줄 수 있는 옷, 몸매를 커버해주는 옷을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입니다. 

 

또 눈, 코, 입은 겉으로 드러나서 영광을 받죠. 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영광을 받습니까. 저도 이제 입이 아주 중요한데 입을 통해서 설교를 잘하면 말씀잘 받았다, 너무나 감사하다 칭송을 받고 영광을 받습니다. 입한테 감사해야죠.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심장, 허파, 내장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앉아 있는 이 시간에도 아침에 먹은 음식물을 소장, 대장 기관이 열심히 소화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또 심장은 24시간 휴가도 없이 나를 위해서 열심히 중노동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영광받는 부분만 중요하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가운데 몸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부분은 무시해도 되는가 -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죠. 사실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교회에 있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설교자가 대부분의 영광을 가져갑니다. 잘 되면 설교자, 또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대부분의 영광을 다 가져갑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가 부흥했거나 아름다운 일이 있다하면 그래서 소식지에 나면 설령 그 교회의 누가 했다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몰라요. 그런데 그 교회가 담임은 대부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담임이 영광을 다 받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그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중보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여러 행정의 수고, 찬양과 특송의 수고, 우리 테레사 사모님 다음번 특송을 누구를 세우고 어떻게 할까 고심하고 고민하는 그런 수고가 보이지 않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섬김과 수고가 사실은 설교자의 헌신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그 교회에서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27-31절에서 바울은 이런 은사를 기초로 여러 직분이 주어지는데 그 직분을 가지고 자랑하거나 혹은 열등감에 빠지지 말고 몸된 교회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타고날 때부터 받은 재능도 그렇지만 하물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받은 성령의 은사는 더더욱 내가 잘난척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은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라고, 주님께서 이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마치 우리 몸에 눈도 필요하지만 귀도 필요하고, 발가락도 필요한 것처럼, 여러가지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주님이 그 뜻대로 주신 그 은혜의 선물들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 담긴 주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여러분도 이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은사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저희 종로7부 교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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