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창세기 5 

 

 

가인의 자손, 셋의 자손 

 

 

말씀/ 창세기 4:1-5:32

요절/ 창세기 4:25,26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3 뒤면 제가 60 됩니다. 지난 주간은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면서 만약 인생 후배들이선배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질문한다면 뭐라 답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정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4:1절을 보십시오. 1아담이 아내 하와와 잠자리했다. 하와가 아이를 가져 가인을 낳고는내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사내아이를 얻었구나.” 하고 말했다

 

아담은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했습니다. 하와가 아이를 가져 가인을 낳고내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사내아이를 얻었구나말했습니다. 가인은얻었다 뜻이거든요. 이름에는 어떤 소망이 있었을까요?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아이를 통해서 3:15절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을 이루실지 몰라, 아이가 아니더라도 그의 후손을 통해 언젠가 약속을 이루실거야 - 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6.25전쟁으로 군인을 제외하고 민간인만 남북한 합쳐 25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군인보다 많이 죽었어요. 군인은 남한만 16만명이 전사했습니다. 실종자까지 합쳐서. 그런데 민간인이 남북한 합쳐 250만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것은 북한군이 점령하면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사, 공무원, 저같은 목회자, 경찰, 사업하는 사람들 전부 인민재판을 해서 죽였습니다. 반대로 남한이 밀고 올라가면 어땠습니까? 인민재판에 관여한 부역자들, 북한에 도움을 주었던 부역자들을 전부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있다가 위에서 내려오면 다시 복수의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남한 백성들이 깨달았습니다. 길은 군대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 그래서 군대가 퇴각하면 같이 따라서 퇴각하고 전진하면 같이 전진하고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전투를 한창 하고 있을 도시락 갖다주고 포탄 날라주고 그런 일을 했다고 해요. 

 

아무튼 전쟁이 끝나고 나서 동네에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습니다. 동네 마을 어른들, 청년들 죽었습니다. 집안 어른들 중에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무얼 했을까요? 본문의 아담과 하와처럼 열심히 아이를 낳기 시작했습니다. 슬픔과 아픔이 있으면 다음에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거예요. 5, 10 지나니까 동네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거예요. 천지에 아이들이 술래잡기하고 줄넘기하고 숨박꼴질하면서 깔깔대고 떠들고 난리를 치는 겁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깊은 슬픔과 어둠에 잠겨있던 어른들의 마음이 위로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생명력이 그들의 마음 안에 있던 죽음의 세력, 슬픔의 세력을 조금씩 몰아내는 것을 느꼈습니다. ‘, 아들이 성장해서 인물이 거야. 가운데서 훌륭한 사람들이 나올거야. 그들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거야.’ 하는 비전과 소망을 것입니다. 본문의 아담과 하와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2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가인은 농사꾼이 되었다. 3그러던 어느 가인은 땅의 열매 가운데 얼마를 여호와께 예물로 바쳤다. 4아벨도 양의 새끼들 가운데서 얼마를 잡아 기름덩이를 바쳤다. 여호와는 아벨과 그의 예물을 눈여겨보셨다. 5그러나 가인과 그의 예물은 눈여겨보지 않으셨다. 가인은 크게 화를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가인을 낳은 것도 위로가 되는데 동생까지 낳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겠습니까!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가인은 농사꾼이 되었고, 아벨은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인은 땅의 열매 가운데 얼마를 하나님께 예물로 바쳤습니다. 아벨도 양의 새끼들 가운데서 얼마를 잡아 기름덩이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물은 받으셨는데, 가인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시골에 어르신이 살고 계신데 어느날 아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어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물했을까 하는데 아들은 옥수수하고 삶은 감자를 선물했어요. 그런데 다른 아들은 맛있는 마블링이 가득한 최고급 등급 스테이크를 선물했어요. 아버지가 스테이크를 선물한 아들의 선물은 흡족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강냉이 옥수수하고 삶은 감자를 선물한 아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랬을까요? 스테이크 선물이 정성이 깃들인 것이죠. 삶은 감자는 정성이 안느껴져요. 그래서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런 겁니까?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같아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본문을 보면 답이 있어요. 4,5a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4아벨도 양의 새끼들 가운데서 얼마를 잡아 기름덩이를 바쳤다. 여호와는 아벨과 그의 예물을 눈여겨보셨다. 5그러나 가인과 그의 예물은 눈여겨보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벨이 드린 예물을 받기 전에 무엇을 보셨습니까? 아벨을 눈여겨보셨습니다. 가인의 예물을 받기 전에 먼저 가인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있는데, 빨리 끝나고 가서 밀린 숙제를 해야겠다, 빨리 끝나고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봐야지, 빨리 끝나고 친구 만나서 재밌게 놀아야지 - 그런 마음이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고 예배를 받지 않으실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기 때문에 집중해서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한편 가인은 자신의 예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크게 화를 내죠. 

 

6,7절을 보겠습니다.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무슨 까닭으로 네가 화를 내느냐? 무슨 까닭으로 고개를 떨구느냐? 7네가 행동을 잘한다면, 고개를 있지 않겠느냐? 그러나 행동을 잘하지 못한다면, 죄가 앞에 숨어 기다리고 있다. 너에게로 죄의 욕구가 향하고 있더라도, 이겨 내야 .”

 

6,7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본문이 바로 여기입니다. 

 

여러분, ‘ 무엇일까요? 성경에 죄에 대해 이론적인 설명을 하기보다 그림언어를 사용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를 통해서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성경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문앞에서 맹수가 웅크리고 있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맹수가 문에 웅크리고 있으면 눈에 안띄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집주인이 나오는순간 맹수가 포효하면서 집주인을 향해 달려드는 그러한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림언어로 죄는 마음의 앞에 엎드린 맹수와 같다고 말합니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숨죽여서 기다리고 있는 맹수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전 영화여서 아마 안보신 분도 계실 같아요. 영화가 3부작 시리즈였는데 사우론의 절대반지에 관한 영화였어요. 절대반지는 마음 속에 있는 더러운 욕망을 끌어내는, 마치 화산이 용암을 끌어내는 것처럼 마음에 감추어진 욕망을 끌어내는 반지입니다. 영화를 보면 갈라드리엘이라는 요정이 나옵니다. 주인공 프로도가 요정에게 절대반지를 맡기려 했을 반지를 보는 순간 요정이 감추어진 욕망을 드러내면서어둠의 여왕이 되리라소리지르다가 잠시 욕망을 이겨내고 나는 반지를 간직할 자격이 없다며 반지를 거부합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영화의 원작자인 톨킨스는 크리스챤입니다. 그는 성경의 죄의 원리를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처음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청년 목회를 했는데 너무도 순수한 마음과 믿음으로 청년 목회를 시작했어요. 청년들을 정말 사랑했고 시간만 나면 청년들을 위해서 눈물로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그런 분이었어요. 이분이 이런 체험을 책으로 썼는데, 저도 읽었는데 정말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의 목회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어요. 수십명으로 시작했는데 얼마 안되어 수백명이 되었어요. 몇년 수천명, 몇년 지나서 수만명으로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사실은 부흥의 이분에게 절대반지가 되었어요. 이분의 마음 속에 감추어졌던 것들을 끌어내는 절대반지가 되었다는 것이죠. 이분의 마음에 감추어졌던 것이 무엇이었냐면 교만과 정욕이었습니다. 저희도 연합예배 한번 초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 일인데 간증하고 설교하시는데 외대 선교단체들을 비하하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별거 아니라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런 말씀을 하시지? 그랬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뭔가 이분 안에 나는 이런 일반 간사들, 일반 사역자들 있는 곳에 내가 와준 것이 엄청난 특권이야 - 이런 마음이 있지 않았었나 이런 느낌을 지금 생각해보니까 받습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서 이분 안에 있던 죄가 이분의 영혼을 삼켰습니다. 청년 사역을 하다보니까 특히 여자 성도들이 이분을 존경하는 것을 넘어서서 흠모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여자 성도들은 마음이 섬세하다보니까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이분의 마음에 어느 순간나를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니까 정도 해도 되지 않을까’ - 결과적으로 여자 성도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해서 결국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안타깝게도 교회를 떠난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목사님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래요. 회사에서 갑자기 높은 자리에 승진하거나 임원이 되면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리거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여러 사람들에게 총기가 배달됩니다. 왕따당하는 고등학생, 직장에서 괴롭힘당하는 직장인들에게 총기가 배달됩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그들이 괴롭힘을 도저히 못견디겠다 하는 순간 배달된 총을 들고 쏜다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트리거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트리거의 순간이 찾아왔을 , 7 말씀 다시 한번 볼까요? 

 

7네가 행동을 잘한다면, 고개를 있지 않겠느냐? 그러나 행동을 잘하지 못한다면, 죄가 앞에 숨어 기다리고 있다. 너에게로 죄의 욕구가 향하고 있더라도, 이겨 내야 .”

 

트리거의 순간이 왔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아까 제가 예로 목사님이 여자 성도들이 너무너무 목사님 존경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 라고 여러가지 말과 행동으로, 눈짓으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그때 행동을 잘해야 되요. 내가 하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부흥시켜 주셔서, 지금 전국의 99% 목사들이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부흥이 안일어나는데 나는 이렇게 수천명, 수만명 부흥이 일어날 - 그때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그때 마디, 마디 정말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속으로 승진하거나 임원이 되었을 그때 행동을 해야 합니다. 뭔가 거만해 보이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사람들에게 굉장히 좋지 않은 평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문의 가인처럼 뭔가 분노할 상황이 되었을 그때에도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의 분노의 감정을 터뜨리면 속이 후련할까요? 한번 터뜨리면 다음에 괜찮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분노는 연쇄폭탄과 같아요.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사진은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연쇄폭탄 테러 사진입니다. 연쇄폭탄은 폭탄 하나가 터지면 폭발의 영향으로 옆에 있는 폭탄이 폭발하고 타다다다다 연쇄 폭발이 일어나는 폭탄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분노는 한번 터뜨리면 그걸로 해결되는게 아니예요. 연쇄폭발을 일으킵니다. 내재되어 있던, 잠재되어 있던 폭탄이 한번에 터져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인간관계가 파탄납니다. 사회적 평판이 파탄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얼마 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국제 행사에서 제가 그룹 리더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열댓분 계셨는데 그중에는 여러 지역에서 선교사님도 계시고 여러분이 있었습니다. 나보다 선배님도 있고, 동년배, 후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하다보니까 너무 말을 많이 했어요. 그때 어떤 선배님이 갑자기 정색을 하시면서분반리더가 너무 말이 많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야기를 정중하게 하면 좋은데 그때 세번째 타임이었는데 이분이 두번 정도 참다가 화가 나셨는지 정색을 하면서 야단치듯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그때 만약 제가 여러 선교사님들 앞에서 이런 수모를 주실 있는가 정색을 하고 같이 반응하면 수많은 경비를 들여 은혜받으려고 참석한 선교사님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짧지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전광석화와 같은 방향을 주셨습니다. “빨리 사과해라. 빨리 미안하다고 해라.” 그래서 제가죄송합니다. 그러면 우리 선교사님들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하니까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트리거 순간이 왔을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을 잘할 있는 비결은 짧게라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체면,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하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8가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나가자고 했다. 들에 이르자 가인은 자기 아우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때려죽였다.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가인이 대답했다. “몰라요.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인가요?” 

 

안타깝게도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마치 휴지통에 집어넣는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마음에 시작된 분노가 폭발했고 마침내 너무도 사랑스러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너의 아우가 어디 있느냐하나님의 질문에 뻔뻔스럽게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대답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있습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10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거냐? 들어 보아라! 아우의 피가 땅에서부터 나에게 소리치고 있구나. 11이제 너는 땅에서부터 저주를 받았다. 땅이 입을 벌려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부터 받아 마셨구나. 12네가 땅을 갈아도 땅이 너에게 열매를 더는 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땅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이 죄없는 아우의 피를 땅에 흘리게 했으므로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것이다, 땅이 내는 소산물을 받아 먹을 없고 땅에서 이러저리 방황하는 인생을 살게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13-16절을 보십시오.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었다. “제가 받을 벌이 너무 무거워 참아 없군요. 14오늘 당장 위에서 저를 내쫓으시는군요. 저로서는 주님의 얼굴을 피해 땅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텐데,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때려죽이려 들겠지요.” 15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사람은 누구든 일곱 배로 앙갚음당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하나 두어,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16가인은 여호와 앞에서 물러나 에덴 동쪽 땅에 살았다.

 

뻔뻔하게도 가인은 자기가 지은 죄에 비해 벌이 너무 무겁다, 앞으로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견디기 어렵다, 죄에 비해서 벌이 너무 무거운 아니냐 말합니다. 이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표를 주셔서 그를 해치는 자는 일곱 배의 형벌을 받도록, 그래서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 주를 시작하면서 이런 끔찍한 이야기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흉측한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 저자가 사실을 기록하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죄가 얼마나 고통을 주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의 자녀가 죄문제로 고통하는 것보다 학교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남편이 죄문제로 고통하는 것보다 연봉이 깎이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문학작품이나 노래가사 등을 보면 죄를 미화하는 경우가 있어요. 요즘 K-pop 세계화되면서 미국 가사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해요. 그래서 노래 중에 욕을 섞고 마약이나 불륜, 폭력을 뭔가 쿨한 것으로 표현하는 - 그것이 미국 가사의 특징이거든요 - 그것을 점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죄는 노래가사나 문학작품처럼 그렇게 트렌디하거나 힙한 것이 아닙니다. 순간에 아들을 잃은 아담과 하와 부부의 고통을 헤아려 보십시오. 아들은 살인자가 되었고 다른 아들은 살인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날에 아들을 잃은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컸겠습니까. 얼마나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고통입니까! 지옥의 고통이 있다면 아담과 하와 부부가 느낀 고통이 바로 지옥의 고통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암을 두려워합니다. 암치료 기술이 발전해서 이전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여러 질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아닙니까? 여러분, 하지만 암은 우리의 몸만 죽입니다. 하지만 죄는 어떠합니까? 죄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 영혼을 죽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옥에 보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학점이 떨어진 것입니까? 취업이 안되는 것입니까? 통장에 돈이 떨어진 것입니까? 남친, 여친에게 버림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것은 영혼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죄를 지을 죄는 반드시 끔찍한 고통을, 자신과 누군가에게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제가 비유하자면 사진을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직장생활에 실패한 것이 개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면 죄를 짓는 것은 포효하는 사자에게 물린 것과 같습니다. 개에게 물리면 아프잖아요. 사자가 앞발로 한대 치면 뼈가 아스라집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어깨를 맞으면 어깨가 팔에서 대롱대롱합니다. 죄가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17-24절은 가인의 후손의 삶의 모습입니다. 가인과 후손의 삶을 모습은 오늘날로 치면 눈부신 경제발전, 문화예술의 발전, 나아가 IT 기술을 발전시키는 모습을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 나면 라멕이라는 사람이 별거 아닌 일로 자기가 사람을 명이나 죽였다 노래를 지어 자기 아내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가인을 죽이면 벌이 일곱배인데 나를 해치면 벌이 77배다 자랑합니다. 

 

가인의 후손의 삶은 문화예술, 경제, 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도시문화를 발전시켜요. 행복할까요? 천국과 같은까요? 아닙니다. 조폭 사회와 같습니다. 여러분, 감옥가는 것이 비단 여름에 에어컨 없어서 힘들까요? 겨울에 난방 안되서 힘들까요? 아닙니다. 요즘 지금 우리나라가 교도소에 에어컨을 달아주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논쟁 중이라고 하는데 갑을논박하다가 복도에 달기로 했다고 합니다. 교도소가 힘든 것은 에어컨이 없어서가 아니예요. 그곳이 힘든 것은 조폭사회같고 끊임없이 폭력으로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든 겁니다. 죄가 가득한 세상은 교도소에 사는 것과 같은 그런 삶을 사는 거예요. 

 

25,26절을 보십시오. 25아담이 다시 아내와 잠자리했다. 아내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지어 불렀다.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후손을 두게 하셨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6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어 불렀다. 그때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담과 하와가 자녀의 사건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에서 뭐라고 하셨죠?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체험을 했습니다. ‘, 죄가 이렇게 죽음을 가져오는구나.’ 아들은 히브리서 말씀에 의하면 순교해서 천국에 갔죠. 하지만 세상에는 없어요. 다른 아들은 살인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죄가 이렇게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것을 체험으로 배운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 사람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을이라 지었습니다. 셋은두셨다(put, place)’ 뜻입니다. 세상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살았고 너무도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세상에 없잖아요. 죽어서 천국에 갔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른 아들인 셋을 세상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다시 소망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아들인 셋을 통해서, 그의 후손을 통해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리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성경은 셋이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새롭게 제사의 시작, 예배하는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셋의 후예의 계보가 나옵니다. 가지 특징이 나오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거의 천년 가까이 살았다 - 천년은 성경에서 영생을 상징해요. 천년 왕국 그러잖아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거의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가인의 후손이 천년 가까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안나와요. 하지만 문화예술, 경제, 기술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상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철근과 콘크리트로 도시를 만들어서 도시로 들어가 나오는 거예요. 누군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기를 만들고,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경제개발을 해서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거예요. 수명이 얼마였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 직접적으로 지옥이라는 단어가 안나와요. 어둠의 , 하데스라고 표현하지 지옥이라는 단어는 안나와요. 그런데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삶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 우리 꿈에 무서운 존재가 쫓아와서 도망가는데 아무리 도망가도 1미터도 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겨우 도망갔는데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악몽을 꾸잖아요. 그런 두려움 가운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 이것이 가인의 후손의 삶입니다. 

 

반면 셋의 후손의 삶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런 삶을 천년 가까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자녀들에게 물려줍니다. 이것이 5 계보의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연구발표 결과가 있습니다. 1900 미국의 교육학자 A. E. 윈십(A. E. Winship) 발표한 연구논문입니다. 그것은 청교도 목회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과맥스 주크스(Max Jukes)’ 가문을 150년을 추적하여 대조 연구한 것입니다. 

 

평생을 신앙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아내 사라 피어포인트 사이에 11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50 기간 동안 그의 후손 가운데 미국 부통령 , 연방 상원의 3, 주지사 3, 시장 3, 고위공무원 80, 대학총장 13, 대학교수 65, 판사 30, 변호사 100, 의사 60 목회자 선교사 100, 작가 60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맥스 주크스는 네덜란드계 이주민이었으며 무신론자에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의 후손은 같은 기간 공직자 없음, 대학 졸업생 없음, 판사, 의사 없음, 종교 문화계 인물 없음, 살인범 7, 상습 절도범 60명을 포함해 범죄자 140, 매춘부 190, 알코올 중독 질병 수백 , 빈민 310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연구결과는 당시 미국 사회에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서 그것이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 가정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고 삶을 자녀들에게 본으로 보여주었을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소극적으로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고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죄짓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죄짓고 괜찮겠지. - 죄는 5, 10 지나 어떤 모양으로든 나와 나의 후손에게 영향을 끼치고 죽음을 가져옵니다. 반면 한번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한번 나의 마음을 드리는 ,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실천 - 아닌 같죠.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를 지배하며 나아가 나의 후손에게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러한 아름다운 살기를 기도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메시지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2023.03.27 1352
179 2026 창세기 12강 "소돔과 고모라" (창 18,19장) Elijah 2026.08.04 10
178 2026 창세기 11강 "여러 민족의 아버지" (창 16,17장) Elijah 2026.07.26 22
177 2026 창세기 10강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창 15:1-6) Elijah 2026.07.23 25
176 2026 여름수양회 주제 2강 "큰 용사여" (삿 6장) - 박이삭 Elijah 2026.07.23 20
175 2026 여름수양회 주제 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창 32장) - 곽상훈 Elijah 2026.07.23 22
174 2026 창세기 9강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13장) Elijah 2026.07.05 58
173 2026 창세기 8강 "바벨탑" (창 10,11장) Elijah 2026.06.29 67
172 2026 창세기 7강 "무지개 언약" (창 8,9장) Elijah 2026.06.22 124
171 2026 창세기 6강 "구원의 방주" (창 6,7장) Elijah 2026.06.15 150
» 2026 창세기 5강 "가인의 자손, 셋의 자손" (창 4,5장) Elijah 2026.06.08 157
169 2026 창세기 4강 "여자의 후손" (창 3장) Elijah 2026.06.01 174
168 2026 창세기 3강 "에덴 창조" (창 2:4-25) Elijah 2026.05.25 167
167 2026 창세기 2강 "인간 창조" (창 1:26-2:3) Elijah 2026.05.11 149
166 2026 창세기 1강 "천지창조" (창 1:1-25) Elijah 2026.05.04 181
165 2026 고린도후서 10강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지 시험하라" (고후 12:11-13:13) Elijah 2026.04.27 184
164 2026 고린도후서 9강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라" (고후 11:16-12:10) Elijah 2026.04.19 199
163 2026 고린도후서 8강 "우리의 싸우는 무기" (고후 10:1-11:15) Elijah 2026.04.13 195
162 2026 부활절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 28장) - 이제임스 전 짐바브웨 선교사 Elijah 2026.04.06 169
161 2026 고린도후서 7강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후 8:1-9:15) Elijah 2026.03.29 168
160 2026 고린도후서 6강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 6:11-7:16) Elijah 2026.03.25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