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창세기 7강 "무지개 언약" (창 8,9장)
2026.06.22 13:42
2026 창세기 7강
무지개 언약
말씀/ 창세기 8,9장
요절/ 창세기 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지난 주 서두에서 코미디언이었던 고 이주일씨가 남긴 말이 뭐였다고 했죠?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뭔가 세상에 보여주기 원하죠. 특히 나를 별볼일없다고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원합니다. 나를 별볼일없다고 무시했던 이 세상에 뭔가 보여주기 원합니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1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 또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들짐승과 집짐승을 모두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땅 위로 바람이 불게 하셔서 물이 잦아들게 하셨다. 2깊은 샘들과 하늘의 창문들이 닫혔고,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그쳤다.
우리 주부들 그런 경우가 있죠. 가스불에 국거리를 올려둔 다음에 빨래하다가 깜박 잊어먹고 “아 참 국을 가스불에 올려놓았지.” 갑자기 기억이 나서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서 불을 끄는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하나님께서도 그러신 걸까요? 좀 다른 일에 바빠서 열중하시다가, “아 참 방주 안에 노아가 있었지.” 갑자기 기억이 나서 얼른 조치를 취한 다음 “큰일 날 뻔 했네.” 하고 하나님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시는 그런 상황일까요? 아닙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이행하기 위해서 드디어 행동을 개시하셨다 - 그런 뜻입니다.
우리 지난 번 출애굽기 말씀 공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백년간 노예생활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어떻게 하셨어요?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셨어요. 기억하시고 곧바로 모세를 부르시는 그러한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수고하고 헌신한 것을 누군가는 기억해주겠지 기대합니다. 그렇죠? 내 헌신과 수고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 정말 너무도 외롭고 슬프고 비참한 것이죠. 어떤 사람은 평생을 회사에 헌신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 회사 일을 더 우선시하고 쉬는 날에도, 주말에도 밀린 업무를 하기 위해서 굳이 안나와도 되는데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매일 야근을 하면서 정말 평생을 회사에 바쳤습니다. 회사는 그의 헌신과 충성을 기억해 주었습니다. 특별 보너스도 주고 진급도 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이 사람을 내 보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보내려고 하는데 차마 그가 평생을 드린 헌신을 생각할 때 나가달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우리 회사 다니시는 분들 잘 아시죠. 일을 안줘요. 아무 일을 안줘요. 그래서 이 사람이 스스로 나가야 하는데 안나가고 버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그 밑에 있던 부하직원을 그의 상사로 승진을 시킵니다. 그래도 버티고 안나가면 어떻게 합니까? 책상을 빼서 지하창고로 책상을 옮깁니다. 거기 가서 일하라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어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어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병든 아버지를 병수발했어요. 여러분, 병든 부모님을 수발하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지 아시죠. 늘 아프다, 죽겠다,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해요. 그리고 조금만 아프면 병원 모시고 가서, 또 간병인 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병원 침대 옆에 있는 간이 매트에 누워 자면서 간병을 하는 수고로움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새벽에 깨어서 화장실 모셔드려야 하고, 또 아프다보면 신경질적이 되어서 화를 막 냅니다. 저도 두달 전인가 저의 아버지 딱 하루 간병했는데 6인실이었는데 거기 계신 분들이 힘드니까 새벽 2시, 3시에 남편하고 아내가 서로 고함을 지르면서 싸우는 거예요. 그런데 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자기가 가진 모든 유산을 딸에게 하나도 주지 않고, 장남에게, 아픈 아버지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장남에게 다 물려준다는 유언을 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딸이 섭섭하고 원통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이사야 49:15절은 말씀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 여러분은 돈을 은행에 입금할 때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입금하시죠? 이 은행이 내가 맡긴 이 돈을 결코 잊어버리지 아니하리라 - 그 신뢰를 갖고 단돈 10원, 아니 단돈 1원도 잊어버리지 않고 내가 달라고 하면 돌려주리라 - 그런 신뢰를 갖고 맡기잖아요.
일본에는 장롱예금이라고, 이른바 ‘단스요킨’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특히 고령의 노인들은 절대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는다고 해요. 일본의 한 경제 연구소의 추산에 의하면 일본의 고령층 노인들이 갖고 있는 돈이 대략 60조엔, 한화로 500조원 이상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 돈이 만약 은행에 들어가서 마치 우리 몸에 피가 돌듯이 은행을 그 돈을 가지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투자한다면 얼마나 일본 경제가 살아날 것인가 생각하면서 이들을 꼬셔서 가진 돈을 은행에 넣을 수 있도록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거의 실패했다고 합니다. 왜 일본 노인들이 은행에 대한 신뢰가 없을까요? 그것은 세계 2차 대전 후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일본이 막상 급하니까 사람들의 돈을 은행에 묶어두고 돌려주지 않은 긴급조치를 한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는 옛날 조선 시대 때 왕 중심의 중앙집권 제도로 운영되어 오늘날 지하철과 버스도 연계되고 모든 것이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촥 진행되는데 일본은 옛날부터 분할 시스템이었잖아요, 성마다 영주가 있고 그래서 오늘날에도 지하철도 1호선 운영 회사가 다르고, 2호선 운영 회사가 다르고 그러다 보니까 은행에 대한 정부보증이 약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은행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은행에 대한 신뢰가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은행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돈을 맡길 줄은 알면서 우리에 대한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존재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계좌에 내 인생을 맡기려는 생각을 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돈을 은행에 맡기는 것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좌에 나의 인생을 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12절은 땅 위에서 물이 조금씩 빠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홍수가 시작될 때 땅에서 깊은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려 40일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비가 내렸습니다. 이 물이 점점 불어났는데 150일간, 7개월동안 계속해서 불어났습니다. 그러다가 150일이 지난 후에 물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는데 7월 17일 노아의 배가 아라랏 산에 걸렸고 10월 1일에는 산봉우리가 보였습니다. 40일이 지나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어 까마귀를 내보냈습니다. 까마귀는 지저분한 곳에도 살 수 있다보니까 방주와 육지를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래서 정결한 짐승인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비둘기는 쉴 곳을 찾지 못해 다시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7일을 더 기다려 비둘기를 보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둘기가 싱싱한 올리브 잎새를 부리에 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땅에서 물이 줄어들었다는 증거였습니다. 노아는 7일을 더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그때 비둘기가 다시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3-17절을 보십시오. 13노아가 601세이던 해의 첫째 달 첫째 날에 이르러 땅 위에 물이 말랐다. 노아는 그 방주의 덮개를 걷고 내다보았다. 아, 땅거죽이 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14둘째 달 스물일곱째 날에는 땅이 바싹 말랐다. 15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16“네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거라. 17모든 생명체 가운데서 너와 함께한 생물,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온갖 짐승을 다 데리고 나오거라. 그것들이 땅에서 떼를 이루어 살고 땅 위에서 번성하고 불어날 것이다.”
노아가 601세 되던 해, 1월 1일 땅 위에 드디어 물이 말랐습니다. 노아가 방주의 덮개를 걷고 내다보니 땅거죽이 말라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부터 약 두달을 더 기다렸다가 2월 27일 마침내 땅이 바싹 말랐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의 가족들, 또 방주 안의 생명체들과 함께 방주 밖으로 나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이 가능하신데 왜 이렇게 물이 빠지는데 오랜 시간 동안, 무려 7개월에 걸쳐서 땅에 물이 빠지도록 하셨을까요?
여러분 배를 타보신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맨 꼭대기에 창문이 있고 지하층, 2층, 3층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홍수가 났을 때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릴 때 창문이 있는 저 꼭대기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무서워서 올라가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처음 한 7개월간은 거의 창문을 열어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총 1년 10일 정도 방주에 머무는 동안 7개월에 걸쳐 천천히 물이 빠지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임대 아파트에 이사와서 빨래 말릴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일체형 세탁기를 샀습니다. 일체형 세탁기로 빨래를 40분간 돌리고 그 다음에 건조기로 한 두시간 말리면 뽀송뽀송하게 옷이 마릅니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예전에는 거의 거실 가득하게 빨래를 말리잖아요. 그러면 여름에는 눅눅하고 그리고 또 잘 안말라요. 공기가 잘 순환이 안되니까. 그런데 이제 일체형 세탁기를 쓰니까 뽀송뽀송하게 좋아요.
하나님도 이렇게 뽀송뽀송하게 한 두 주일만에 땅이 마르게 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저번 주에 제가 노아 방주 사건이 뭐라고 했죠? 노아 방주 사건은 우리 구원의 하나의 모형이다라고 했습니다. 방주는 뭐라고요?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홍수는 뭐라고요? 최후심판의 모형이다.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 안에서 1년을 기다린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 시대의 모형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수년 전에 국제 수양회에서 유대인 교육법에 대해 연구발표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굉장히 인상깊게 느꼈던 중의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은 자녀가 “아빠, 나 게임기 사줘, 자전거 사줘” 할 때 유대인들은 반드시 기다림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알았어. 한 달만 기다려. 두 달 있다가 사줄게.” 이것이 유대인 교육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하는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인내와 절제력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절제력이라고 믿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자기 절제력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때가 어렸을 때라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절제하고 한 달이나 두 달간 기다릴 때 그때 절제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제가 살던 집, 제가 살던 도시에는 집집마다 그래도 흑백 TV가 있고 한 열집에 하나 걸러 컬러 TV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태어난 시골 고향에는 온 동네에 한집, 아니면 두집에 TV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루치 아라치’라는 인기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마루치 아라치 하는 날에는 벌써 그 전날부터 설레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부터 그 시간이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딱지를 치면서도 아 오늘 마루치 아라치 하지 하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딱지를 치다가, 딱 시간이 되면, 너무 일찍 가면 그집 아줌마가 뭐라고 하니까 한 5분이나 10분에 가서 온 동네 애들이 흑백으로 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10, 9, 하다가 마침내 시작해서 노래가 나오면 막 떼거리로 합창을 하면서 마루치 아라치 정의의 용사 마루치 아라치 따라 부르며 너무나 흥분된 마음으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1초도 기다릴 필요가 없죠. 띡 누리면 보고 싶은 영상이 나옵니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설레이는 가운데 뭔가를 기다리는, 그러한 가운데 기다림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는 그러한 것이 없어진 것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대인들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은 금방 될 수 있지만, 진짜로 소중한 것은 반드시 시간이 걸린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유대 전통에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혜로 보았습니다.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라고 하는데 이 지혜는 돈보다 귀하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호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결코 단시간 내에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주식 투자로 벼락부자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귀한 것들은 단 시일 내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기다림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다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기다림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법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역사 가운데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를 기다리지 못했어요. 사막에서 조금 덥다고, 조금 물이 없다고, 양식이 없다고, 목마르다고 그거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지금 당장 가나안에 보내주오 하다가 망했잖아요. 유대인의 역사의 반복된 패턴입니다. 삶의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 조금만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참으면 되는데 그거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망했잖아요. 역사의 교훈을 통해서 뼈저리게 배운 유대인들은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이 기다리는 훈련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잊어버려요. 쉽게 얻은 것은 별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기다리면서 마침내 얻은 것은 굉장히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았는데 벌써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정서적 우울증에 빠져서 아이가 우울해하고 슬퍼하고, 내가 왜 태어났을까, 엄마 왜 나를 낳았어 - 그러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낳았을 때 우리 자녀가 행복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라고 다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맨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불만족에 시달리고, 욕구 불만에 시달리고 우울해하고 힘들어하고 슬퍼하는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시라고 보고 싶어하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더라도 우리가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보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셔서 그것을 주기 위해서 마음이 아프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가장 먼저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번제물을 드렸어요. 번제물의 냄새를 맡으신 하나님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세상에 심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 전에는 제 2의 홍수, 제 2의 노아, 제 3의 홍수, 제 3의 노아 - 이런 반복된 패턴이 없을 것이다, 홍수로 인한 심판과 노아를 통한 구원은 단회적으로 끝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결심인 것입니다.
9:1-7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번성하고 불어나 땅에 가득해지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홍수 이후에는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홍수로 인한 기후 변화로 인해 사람이 식물만 먹어서는 살 수 없어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8-17절은 무지개 언약에 관한 말씀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16무지개가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면, 내가 그것을 보고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과 땅 위의 모든 생명체 가운데 온갖 생물 사이에 맺은 언약이지.” 17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언약의 증표이다. 나하고 땅 위의 모든 생명체 사이에 내가 세운 언약이지.”
이 말씀은 모형론적으로 보면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면 거기에는 죄가 없고 죄로 인한 죽음이 없고, 다시는 심판이 없을 것이다 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가서 또 죄를 지으면 어떡하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거기에는 무지개 언약, 무지개 언약이 하나의 모형이라고 했잖아요, 하나님 나라에는 결코 죄가 없고 죽음이 없고 죄로 인한 형벌이나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 지금 교회 시대에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인해서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이 취소되고 심판받을 수 있는가, 지옥에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제 루터와 칼빈이 카톨릭의 잘못된 성경 해석에 - 카톨릭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예요, 어떤 부분에서 잘못된 것이 있고 그 잘못된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 잘못된 부분, 특히 구원론에 대해서 정확하게 해석했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세계 교회의 흐름과 추세가 어떤지 아십니까? 요즘 세계 교회의 흐름과 추세가 뭐냐면, 많은 신학자들 많은 큰 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사님들의 흐름이 뭐냐면 수백년 전의 루터의 칼빈의 성경 해석은 그 시대의 카톨릭과 싸우기 위해 한 것이지 그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제는 수백년이 지났으니까 성경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 그런 흐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뭐냐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우리가 전통적으로 구원에 관해서 중요한, 핵심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알고 있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보다는 마태복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의 신앙의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자와 같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마태복음에 주목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신자들의 행위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이런 영향을 받은 설교들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고 있는데 예를 들면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뭐라고 하냐면 “진짜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버림받아 지옥에 갈 수 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구원 단계를 세분화합니다. 과거의 구원(칭의), 현재의 구원(성화), 미래의 구원(영화)로 나눕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 특히 도덕적인 죄, 신앙적인 죄를 날마다 날마다 애통히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고자 하는 투쟁을 끝까지 해야지 나중에 최종적인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이런 설교를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전 세계적으로, 또 우리나라의 많은 설교자들도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되고 나의 어떤 말씀을 순종하는 삶의 순종과 행위가 있어야 한다, 도덕적인 면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철저히 회개하고 신앙적인 면, 특히 기도를 게을리했거나, 전도를 게을리했거나 신앙적인 면에서 내가 게을리한 부분이 있으면 가슴을 찢고 애통하게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 - 그런 방향으로, 노골적인 교회도 있고 그런 방향으로 설교하는 그런 메시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기회를 통해서 확실하게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의 공로도 필요하지만 나의 행위의 의로움도 내 구원에 필요하다 - 이렇게 믿는 것은 비유하자면 초가 덤불로, 나무와 흙, 초가 덤불로 집을 지어서 그 집을 천국에 가지고 가 영원히 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초가집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겠습니까? 또 비유하자면 한 달 죽도록 열심히 일하고 알바 사장한테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을 달라. 고작 60년, 80년 교회 일에 충성하고 억만 년, 영생의 축복을 달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작품 모나리자 앞에 가서 단돈 천원을 내밀면서 이 작품을 달라. 모나리자 소유자가 볼 때 웃기지도 않는 어이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 어이없는 요구입니다. 또 비유를 들자면 여러분, 반도체 공장에서 특히 중요한 공정에서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사람의 피부에서 나오는 미세한 눈에 보이지 않는 피부 각질, 또 숨을 쉬면서 나오는 미세한 공기 덩어리가 그 예민한 반도체 회로 기판에 떨어지면 오류가 발생해요. 그 오류가 발생하면 엄청난 금전적 손실뿐만 아니라 공장 전체가 스톱돼요. 여러분, 천국은 죄에 대해서 이와같이 무균실입니다. 여러분, 물이 한컵이 있는데 치명적인 독이 한 방울 떨어졌다고 해서 그 물이 안전할까요? 99%는 깨끗하고 1%만 치명적인 코브라의 맹독이기 때문에 마셔도 괜찮겠습니까? 천국에 조그만 작은 죄가 용납되어서 하지만 수십억 사람들의 죄가 먼지처럼 쌓여있는 그곳이 과연 천국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천국에 만약 조금이라도 죄가 있다면, 작은 세균이, 작은 바이러스가 우리를 죽음에 몰아넣듯이, 천국에 만약 조금이라도 죄가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고 또다시 죄와 죽음이 우리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 보실 때 천국이 천국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죄가 하나도 없어야 해요. 완전히 의로워야 해요. 우리가 어떻게 이 완전한 의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을 때 - 우리 마태복음에 천국에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이 몇몇 있잖아요. 쫓겨나지 않습니까. 자기 의를 옷입고 온 사람들 - 내가 이거 했어. 내가 교회 세웠어. 내가 교회 부흥시켰어. 내가 주를 위해서 이런 헌신을 했어. 여러분,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주를 향한 헌신도 그 안에 주님께서 보실 때 죄가 있습니다.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내가 너보다 나은 신자야 - 자기를 우위에 두는 교만함! 죄가 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뭐라고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 우리가 그 의를 옷입을 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8:1,2절을 보십시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죄 판결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그대를 자유롭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요한일서 4:18절 말씀을 보십시오.
18두려움 따위는 사랑 안에 없습니다. 오히려 완전한 사랑은 그 두려움을 밖으로 쫓아 버립니다. 그 두려움은 벌받는 일과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나의 행위와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에 기초한 신앙생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을 취소하고 지옥에 던져버리지 않으실까 이런 생각 때문에 늘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움에 기반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물론 정말 경건한 두려움은 필요해요.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한분을 경건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옥에 가지 않을까,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에 기반해서 하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 무지개 언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그거예요. 이 무지개를 보고 두려움이 아닌 평안함을 가지고 나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한 인내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을 갖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 주시는 그 은혜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저희가 그런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