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창세기 9강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13장)
2026.07.05 16:12
2026 창세기 9강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 창세기 12,13장
요절/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얼마 전 월드컵이 아쉬운 결과로 끝났습니다. 감독 이름이 뭐였죠? 벌써 표정이 안 좋아지시는 분이 있는 것 같은데 원래 홍명보 감독은 사실은 영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할 때 마지막 4강을 결정짓는 그 승부차기 골을 홍명보 감독이 담대하게 넣었습니다. 당시 상대가 스페인이었는데 스페인 선수가 승부차기 준비를 할 때 제가 표정을 보니까 잔뜩 긴장한 것이 보였습니다. ‘아, 저 선수 못 넣겠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못 넣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홍명보 감독이 나왔는데 표정을 보니까 담대해요. 그리고 골을 넣더라고요. 골을 넣은 후 양 주먹을 불끈쥐고 환호하는 그 모습이 애국가 영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 영상에서 삭제해라, 애국가 부를 때 홍감독 얼굴 보고 싶지 않다 - 그런 청원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한민국 축구의 복의 근원이었던 분이 최근에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축구의 화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GS25에서 “홍명보는 출입금지” 써붙여 놓았더라고요. 이게 외신까지 보도가 되었어요. 지금 어디 계시죠? 지금 미국에 도피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다 선수시절 홍명보 감독처럼 복의 근원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누가 화의 근원, 숨어지내는 인생을 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시고 복이 되는 인생을 하시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땅과 친척과 아버지 집에서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은 방금 읽은 것처럼 “너의 땅과 친척과 아버지 집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셨죠?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러분, 이 말씀에서 어떤 한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딱 떠오르는 한 단어. “가라?” 네, 좋습니다. 저는 이 1절 말씀에서 “안정성”과 “불안정성” - 그 단어가 떠오릅니다. “안정된 삶과 불안정한 삶” 여러분은 안정된 삶을 살기 원하시죠? 불안정한 삶, 내일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날마다 그런 삶을 누가 살고 싶겠습니까?
이 말씀은 아브람은 굉장히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브람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는지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지도를 보면 지도에서 주황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아브람이 살던 ‘우르’라는 도시가 있던 곳입니다. 아브람이 몇년 전 사람인지 혹시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 사람입니다. 우리가 21세기 모던한 시대에 4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일생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어쨌든간에 4천년 전이면 정말 옛날입니다. 그런데 4천년 전 아브람이 살던 우르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그 도시는 어떤 문명이었냐 하면 ‘수메르 문명’이었습니다.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사진 위가 ‘우르’라는 도시의 ‘지구라트’라는 신전이 발굴되기 전의 모습과 발굴된 후의 모습입니다. 연구를 해보니까 이 신전이 4천년 전에 건설된 달의 신을 섬기는 신전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다음 사진 보겠습니다. 이 사진은 레너드 울리라는 사람이 발굴한 당시 일반 주택가의 사진입니다. 다음 사진은 아브람이 살던 시절을 복원한 주택의 모습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이 집은 대부분 2층 벽돌집이었어요. 여러분, 여러분은 아파트 살면 좋은 집에 산다고 생각하잖아요. 진짜 좋은 집은 2층 벽돌집입니다. 성북구 이런데 조용한 곳, 언덕에 있는 집입니다. 이 집을 보면 가운테 탁 트인 안뜰이 있고 이 뜰을 중심으로 10-14개의 방이 배치되었습니다. 벽은 두꺼운 진흙 벽돌로 지어 한여름의 폭염을 막았으며 놀라운 사실은 집집마다 화장실과 하수도가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상류층의 집에서는 쐐기 문자로 된 종교 문서, 법률 계약서, 수학 계산법, 오늘날 우리 1시간이 몇 분이죠? 60분. 이 60진법이 수메르 문명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 지금은 강줄기가 바뀌고 퇴적물이 쌓여서 우르가 내륙 한 가운데 있지만 아브람 당시에는 유프라테스강과 페르시아만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 국제적인 항구였다고 합니다. 다음 사진 보겠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당시 우르 시민들은 매우 풍요로운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상 무역을 통해 오늘날 인도지역의 금, 은, 보석을 수입했습니다. 무역할 때 은의 무게를 달아 결제하는 고도의 금융 시스템이 있었고 또 상업 계약서, 영수증, 채무증서 등을 점토판에 철저히 기록했다고 합니다.
또 학문적으로도 발전해서 ‘점토판의 집’이라 불리는 학교가 있어 학자가 되려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언어, 문학, 수학, 천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고도의 기하학을 이용해 토지를 측량하고 세금을 계산했으며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우르-남무 법전’을 만들어서 여러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이른 바 법치사회였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할 때 불량한 사람들이 빼앗아가고, 힘센 사람들이 약탈하고, 남의 아내를 빼앗고 하는 것은 굉장히 불안정한 삶입니다. 나중에 보면 아브람이 이집트로 가서 자기 아내를 뺏길까봐 내 누이라고 거짓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수메르 문명은 법의 보호를 받는 법치사회였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집트로 떠나게 되니까 불안정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갈대아 우르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청담동? 이 시대의 갈대아 우르는 제가 살펴보니까 대한민국입니다. 진짜로. 요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쇼크를 받는데요. ‘미래 세대를 와 본 것 같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신호등을 기다릴 때, 우리 보통 신호등 기다릴 때 휴대폰 쳐다보잖아요,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는데 발밑에서 파란불이 깜빡깜빡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이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추운 한겨울 버스 정류장을 갔는데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에 있는 대기 장소가 있는 것을 보고 외국인이 자기도 들어가 보았어요. 그런데 위에서 히터가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앉았더니 궁둥이가 뜨끈뜨끈하고 심지어 놀라운 사실은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어요. 버스 기다리는 사이에. 그래서 이걸 알렸더니 세계인들이 거짓말 아니냐, 뻥 아니냐,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골드만삭스에서 놀라운 뉴스가 나왔는데 2028년 삼성전자의 매출 말고 1년 순영업이익이 494조원, 엔화로 약 53조엔에 이를 것이다 - 이렇게 예측을 했어요. 지금 벌써 이미 올해 1분기 실적에서 조금만 늘어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한 예측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본 사람들을 굉장히 놀라게 했는데 만약 골드만삭스의 예측대로 된다면 삼성전자 1년 순이익이 일본에 상장된 일본 회사 상위 1등부터 100등까지 모든 영업이익을 합한 것보다 삼성전자 한 회사의 영업이익이 더 많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쇼크를 받았어요. 와!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오늘날 갈대아 우르는 대한민국이다 이런 결론을 내려도 될 것 같아요. 아브람은 당시 이와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 국가, 또 법치 국가에서 굉장히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뭐라고요 - 그런 안정된 삶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삶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라고요? 그 다음에는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여러분,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서 느껴지는 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극도의 불안정성”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삶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누구나 인생을 살 때 안정된 삶, 내 삶의 청사진을 보기 원해요. 그러죠. 우리가 대학에서 전공할 때 뭘 보고 전공을 정했습니까? 미래 청사진, 미리 전망을 보고 정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가장 전망이 좋은 학과가, 대학이 의대라는 거예요. 의대는 정말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의사 면허증만 있으면 무슨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의사면허증만 keep 하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일해서 돈 벌 수 있고, 또 일하다가 쉬고 싶으면 좀 쉴 수 있어요. 제가 보니까 의사는 정말 특권이 있더라고요. 가서 일하고 좀 쉬고 싶으면 쉴 수 있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일하는 자유로움이 있고 또 고소득이 보장되고, 또 그곳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막 해요. “이 병원에는 이것이 문제다.” 병원장에게 얘기하고, 그래서 해고되면 좀 쉬었다가 이전에 비해 부족하지 않는 월급을 받고 또 다른 곳에서 일하고 그러니까 부럽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요새는 의대보다 더 전망이 좋은 과가 생겼습니다. 반도체학과입니다. 요새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반도체학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뉴스 보도를 보니까 요즘 청년들이 정서적인 불안정감을 넘어서서 우울증에 걸리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가지고 내가 버는 월급으로 계산해보니까 내가 한 달에 최대한 얼마씩 저금을 해서 10년, 20년, 30년을 모아서 과연 내가 이 오르는 집값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집을 살 수 있을까 하니까 계산이 안되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냐면 청년들의 마음에 불안감을 넘어서 우울증이 생겼다는 거예요. 제가 얼마 전에 세브란스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시간이 좀 남아서 이러 저리 구경을 했는데 저쪽 외진 곳에 정신과 병동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 뿐만 아니라 연세드신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내 인생의 청사진, 내 노년 요즘 백세 시대인데 20년, 30년 내 인생의 로드맵을 보기 원합니다. 내가 만약 1년 동안 얼마씩 쓴다면 죽을 때까지 병원다니며 쓸 수 있는 그런 안정적인 돈이 있는가 그거를 확인받기 원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하십니다.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아브람을, 잘살고 있는 아브람을 불러서 지극히 불안정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삶의 과정과정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같습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모든 길을 한꺼번에 비쳐주진 않잖아요. 종착역까지 다 비쳐주진 않잖아요.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그때그때 한 100미터 정도, 길어야 200미터 정도 지금 내가 바로 가야 할 그 길만 딱 비쳐줍니다. 하지만 그 헤드라이트의 인도함을 받아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됩니까? 마침내 내가 원하던 종착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23,24절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23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멘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려워요. 24그대들에게 다시 말합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차라리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쉽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극히 드문 일이다 -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부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부자가, 그가 가지고 있는 부가 그에게 주는 삶의 안정감, 미래에 대한 보장,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이 필요없고 신앙이 필요없고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돈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몰라요. 미래가 보장된다는 그런 느낌이 들죠. 돈이 있으면 웬만한 인생의 힘든 일, 어려운 일은 다 커버가 되요. 마음에 굉장히 안정감이 있고 불안과 염려가 다 사라져요. 정신과에 갈 필요가 없어요.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가장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삶의 불안정함 가운데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2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너에게 복을 내려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해 주마. 그러니 너는 복이 되어라!
하나님은 이렇게 무조건 불안정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로드맵은 보여주지 않으시지만 놀라운 비전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 비전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금 현재 늙은 아브람은 자식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 아브람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너무나 놀라운 비전의 말씀이죠.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서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지난 주 바벨탑 사건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우리 이름을 떨치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유명하게 해주겠다. 내가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해 주겠다”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막연한데 삶이 힘들지만 그래도 인생을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가 어떤 한 기사를 보니까, 또 제가 전공이 서양 언어다 보니까 좀 알고 있는데, 서양 사람들은 먹는 것에 별로 진심이 없어요. 직장에서 일하다가 아무거나 갖다가 대충 때웁니다. 진짜 간단한 것 사다가 우적우적 먹고 심지어 먹으면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서양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점심식사는 마치 자동차에 필요한 연료를 넣는 것처럼 나한테 오후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연료를 넣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먹는 것에 진심이예요. 심지어 출근하자마자 오늘 점심 뭐먹을까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오늘 오전에 열심히 일한 다음에 이따가 점심 시간에 맛있는 음식 먹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삶의 힘이 되고 활력소가 되죠.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 자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새로 이사 간 집 자랑하고, 또 자식 자랑합니다. 우리가 가끔 친구들 만나고 싶어 밖에 나가서 친구 만나고 난 후 괜히 기분이 나쁜 때가 있어요. 그런 경우 대부분 자랑을 들었을 때에요. 내가 요즘 새차 샀다, 내가 이런 멋진 사람하고 사귀고 있다, 우리 자녀가 이런 좋은 대학에 갔다, 우리 아들이 나한테 한 달 용돈을 이렇게 줬어 - 그렇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때 굉장히 마음의 상처를 받고 하루가 우울합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이 세상은 각자가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는, 그것을 삶의 활력소로 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아브람은 그러한 삶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시는,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 주시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학교 근처의 작은 중국 음식점을 갔어요. 그 식당을 가보니까 짜장면 한 그릇에 4천원, 우동은 3천원인데 음식이 저렴하고 맛이 있어요. 특히 7천원짜리 세트 메뉴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 음식을 만드신 분이 한 팔을 기브스를 하고 계셨어요. 그 다음에도 보니까 여전히 기브스를 하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안타까운 마음에 “많이 다치셨나봐요. 기브스는 언제까지 하셔야 돼요?” 했더니 이 분이 “아, 제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좀 팔이 이래요.” 그러시는거예요. 제가 얼마나 민망한지 “아 그렇군요” 하고 음식값을 지불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큰 아들과 함께 음식점에 갔는데 테이블에 있는 칼렌다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그날이 11월 6일이 아니었는데 11월 6일자 칼렌다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병이나 가난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그 밑에 사무엘상 2:7절 말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저는 이 칼렌다를 보면서 이분이 기독교인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고 이분이 어떤 마음으로 식당에서 요리를 만드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런 기브스를 할 수밖에 없는 약한 팔을 주셔서 나를 낮추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이 하나님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값싼 요리를 만들어서 돈이 없는 서민들이 마음껏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분에게 여쭤본 건 아니예요. 하지만 거의 맞을 것입니다. 정말 싸고 양도 많고 맛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립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 주겠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정말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 그런 의미보다 하나님 보실 때 유명한 사람, 내가 볼 때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네가 비록 빛도 이름도 없이 유명하지 않지만 내가 반드시 너를 하나님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갈 때 이런 분들이 정말로 유명한 분이 되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다시 2절을 보십시오. 2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너에게 복을 내려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해 주마. 그러니 너는 복이 되어라!
한국 사람은 ‘복’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해요. 한자로 복을 풀이하면 좌편의 보일 시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우편의 복자는 병에 술이 가득한 상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해요. 그래서 복은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하늘에서 주는 건강과 생명의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복이라는 단어을 좋아해서 이사갈 때 집 대문에다 꼭 ‘복’자를 써서 대문에 붙여놓았습니다. 또 어린 아이의 돌복, 전통 한복에 복자를 수놓았습니다. 또 베개와 이불에서 자수로 ‘복’자를 수놓기도 하고 또 집안 사랑방이나 안방에 ‘복’자를 크게 써서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듣기 원하는 말도 이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가 복받았어요.”
“서민성 목자님, 서사라 사모님이 종로7부에 와서 종로7부가 정말 복받았어요.”
“문에스라가 7부에서 있어서 7부가 정말 복받았어요.”
이런 말을 듣는다면 정말 기쁘겠죠.
또 아내가 “여보, 내가 당신을 남편으로 만나서 나는 정말 복받았어요.”
우리 결혼하신 분들 서로 해 볼까요.
그런 말 들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그 반대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직장에서
“당신 때문에 정말 우리 회사가 골치입니다.”
또 가정에서
“당신을 배우자로 만나서 난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어요.”
“당신을 부모님으로 만나서 정말 난 힘들었어요.”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백이면 백 다 괴로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지금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복이 되어라”
“너는 어디를 가든지 ‘당신 때문에 우리가 복받았어요.’ 그런 말을 듣는 그런 인생을 살아라”
이것은 그런 인생을 살라는 명령도 되지만 내가 반드시 네가 그런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겠다,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큰 그림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창세기 말씀에서 우리 인간의 모든 삶의 고통의 근원이 뭐라고 했죠? 선악과를 따먹는 것,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없이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 - 그것이 바로 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든 삶의 고통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셔서 그를 복의 근원, 복의 통로로 만드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그런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떻게 다릅니까? 세상의 복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조건과 소유에 달려 있죠. 외적인 환경에 달려 있어요. 내가 어떤 집에 사는가,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가, 또 자녀가 어떤 대학에 다니고 어떤 직장에 다니는가. 그렇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우리의 복은 흔들립니다. 이게 주식하고 똑같아요. 내가 전재산을 영끌해서 주식에 투자했는데 자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주가가 10% 올랐어요.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그런데 하루 더 자고 나니까 미국에서 무슨 뉴스가 떠가지고 20% 떨어졌어요. 그러면 너무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이죠.
이와같이 세상의 복은 어떤 외적인 조건에 따라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존재의 문제요,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존재의 문제요, 관계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존재의 문제, 관계의 문제는 외적인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아요. 변하지 않아요. 우리 결혼하신 분들 서로 사랑해서 남편과 아내가 결혼했을 때 뭐 남편 월급이 조금 떨어졌다고, 삶의 어려움이 찾아왔다고 사랑이 변하지 않잖아요. 존재의 문제고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저는 젊었을 때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서 내가 유능한 사람이 되어서 어디를 가든지 돈도 잘 벌고 무시 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고 또 가족들도 나를 존경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니까 그렇지가 않아요. 여러분, 우리 엄마 아빠가 명문대 나왔어, 서울대 나왔어 - 그러면 존경할 것 같죠. 여러분, 그 존경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존경하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 덕분에 내가 이런 30평, 40평 좋은 아파트에 살아, 이제 좋은 외제차 타고, 내가 학원다니고 싶다고 하면 청담동 학원 백만원, 이백만원 빵빵하게 대주셔. 존경할 것 같죠? 그냥 잘됐다, 편하다, 운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지 그것 때문에 부모님을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배우자가, 자녀가 어떨 때 부모를 존경할까요? 아까 제가 홍명보 감독 예를 들었는데 홍명보 감독이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 두렵고 떨릴 때 내가 마지막 이 골을 넣으면 대한민국 월드컵 4강에 진출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안 될 수도 있는 그 정말 떨리는 상황에서 담대하게 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환호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애국가에 대표 영상에 나온 것이죠. 그랬던 홍명보 감독이 왜 갑자기 하루 아침에 화의 근원이 되었습니까? 물론 결과가 안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의 분석에 의하면 “쫄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아공과의 시합에서 1대0으로 지고 있을 때 어떻게든 공격수를 투입해서 동점을 만들거나 이기려고 해야 했는데 1대0으로만 지면 산술적으로 90% 가까이 확률이 있었다는 거예요. 2대0으로만 안지면 된다는 거예요. 실제 상황이 그렇다는 거예요. 당시 통계 사이트를 보면 1대0으로 지면 90% 가까이 확률이 있었다고 해요. 실제 홍명보 감독의 속마음을 모르니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요. 저도 자칫 이 메시지가 홍명보 감독에 대한 인신공격이 될까 우려스러운데, 하여튼 축구팬들이 하는 말이 그래요. 그 순간 1대1을 만들고 2대1을 만들 생각을 해야 되는데 1대0을 유지하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계속 수비수를 집어넣고 수비적인 전략을 해서 1대0으로 지는 것에 만족한 것 아닌가, 그래서 홍쫄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포인트는 우리가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배우자나 자녀가 아버지를 존경하는가, 존경하지 않는가는 그 아버지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얼마나 명문대학을 나왔고 얼마나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인가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의 그래요. 99%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가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삶의 시련의 때, 위기의 때에, 정말 쫄리고 힘들 때, 정말 어려울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 삶의 실의와 시련과 위험과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드러눕고 도피하고 회피하고 가족이 뭐라고 하면 밥상 뒤집어 엎고 그런 모습을 보였는가, 아니면 그 삶이 힘들 때,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고 - 거기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제가 아까 삶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얘기했는데 삶의 시련과 어려움이 왔을 때 그것을 참아내고 이겨내는 법은 갑자기 어느날 될까요? 여러분, 수영을 배우고 싶어요. 그러면 유투브 영상을 틀어놓고 하루종일 수영에 대한 강의를 듣고 수영에 대한 책을 읽고 또 뭍에서, 방에서 수영하는 연습을 하면 수영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못합니다. 수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두렵고 떨리지만 빠져 죽지 않을까, 또 수영 못한다고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챙피한 마음이 들지만 그걸 극복하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야죠. 물속으로 들어가야지 수영을 배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자명한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만약 복의 근원이 되고 정말 여러분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님이 되고 싶다면, 또 하나님께 정말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다면 수영을 배워야 합니다. 좀 말이 이상한데, 삶의 불안정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불안정한 삶으로 들어가야지 그 불안정한 가운데 그것을 이겨내는 수영법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내가 이 삶의 위기에서 인내하고 참고 물에 뜰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꼬르륵, 꼬르륵 가라앉아가지고 절망하고 침대에 누워서 하루종일 안나오고 게임이나 이런 것으로 도피하고 가족들이 뭐라하면 방문 잠그고 기물 때려부수고 그러지 않고 물에 뜨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삶이 힘들지만 내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들고 물에 뜨는 거예요. 물에 떠서 숨도 쉬고 온갖 생각도 해요. ‘오늘 오후에 뭐할까?’ 수영을 하면서 생각도 해요. 수영이 늘면 수영을 하면서 생각도 한다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반드시 수영법을 배워야 합니다. 수영장에 가세요. 결혼하기 전에 삶의 불안정함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너무 안정되고 미래 청사진이 보이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멀리까지 안가더라도 결혼한 후에 내 배우자에게, 내 자녀에게 무시받고 싶지 않으면 삶의 불안정함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불안정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불안정함을 내가 참고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배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