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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마가복음 6강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씀/ 마가복음 5:1-20 

요절/ 마가복음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우리 각자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내 존재를 대표하고 상징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나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거라사 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 지방은 데가볼리라고 불렀습니다. 데가볼리(Decapolis)는 10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본래 알렉산더 대왕이 헬라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도시입니다. 이후 유대인들이 유대 하스모니안 왕조를 건설하고 이 지역을 다시 유대화하려 힘썼습니다. 하지만 BC 63년 다시 로마땅으로 편입되었습니다.이곳은 오늘날 이태원처럼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이국적 색채가 강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또 무엇을 위해 거라사 땅에 오셨을까요?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등골이 오싹 했을 것입니다. 밤새 풍랑을 헤치고 오느라 아직 정신이 없는데 날새자마자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니 이게 웬일인가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주일아침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왔는데 아침부터 귀신 이야기 들으니까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귀신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목자님들은 대부분 믿으시는 것 같은데 청년팀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혹 귀신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배우 정호근이 방송에 출연하여 충격적인 자신의 인생사를 고백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신기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친구에게 “야, 니네집 마루 밑에 무덤이 2개 있어.” 말했습니다. 말하고 난 후 말한 자기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마루 밑을 살펴보니 무덤이 2개 있었습니다. 성장하여 나름 유명한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붙잡고 있던 신(귀신)이 무당이 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자 연기하고 있을 때 어떤 때는 장군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여자 모습으로 나타나 자기를 뻔히 쳐다보았습니다. 또 무당이 되지 않으면 너의 자식에게 대물림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무당이 되었습니다.

 

개그우먼 김주연은 2년간 신병을 앓은 뒤 무당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낮엔 멀쩡하다가 저녁만 되면 열이 펄펄 나면서 아팠습니다. 나중에는 반신마비가 왔습니다. 병원에서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울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입으로 ‘네 아빠 아니면 너 데리고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은 그동안 다 미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영적 세계가 있기는 있나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귀신은 본래 하나님을 대적한 천사들입니다. 본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반역을 일으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피아나 조폭 단체 아시죠? 이런 조폭 단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조폭들은 합법적인 정부 조직이나 기관을 흉내냅니다. 대통령이 있고 각부 장관이 있고 밑으로 실무 직원이 있는 것처럼 조폭도 조직이 있습니다. 세금 걷으러 다니는 조직원이 있고 관리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불법과 폭력, 살인이 난무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귀신은 하나님 흉내를 내며 사람들이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를 섬기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그 사용하는 방법이 협박과 폭력입니다. 조폭의 협박에 못이겨 그 조직에 협조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함께 처벌받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귀신의 협박에 못이겨 귀신을 섬기면 그 귀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함께 심판받게 됩니다.  

 

저는 귀신의 협박에 못이겨 무당이 된 배우들의 간증을 들으며 이들의 영혼이 참으로 불쌍했습니다. 기억날 때마다 이들이 귀신의 속박에서 풀려 주께 돌아오도록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문의 청년도 이처럼 조폭같이 잔인하고 악랄한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그는 무덤에서 살았습니다. 괴성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는 그를 제어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랑과 쇠사슬로 그를 묶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괴력을 발휘하여 고랑을 깨고 쇠사슬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매어놓은 고랑과 쇠사슬을 끊은 그는 이전보다 더 큰 분노로 가득하여 짐승처럼 괴성을 질렀습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돌로 피가 나기까지 자기 몸을 자해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는 그가 살던 거라사 지방의 환경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도 점차 거라사화되고 있습니다. 거라사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따위는 무시합니다. 철저히 눈에 보이는 것만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품, 인격 - 이런 것보다 눈에 보이는 외모가 백배는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과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 어떻게 다른지 아십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누구든지 추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인격을 갖춘 사람,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으며 낙오자가 될 염려도 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그 가치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면 됩니다. 

 

이에 눈에 보이는 가치를 추구하면 어떻게 됩니까? 눈에 보이는 가치는 치열한 경쟁, 비교, 낙오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 - 그러면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합니다. ‘유명하다’는 말 자체가 수많은 유투버 중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극소수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의대 입학은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모든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다 가질 수 있다 한다면 누가 그것을 선망하겠습니까? 극소수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선망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한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마치 전문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일반인이 아닌 전문 산악인에게 에베레스트 산은 반드시 정상까지 올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정상 바로 밑에서 악천우로 포기하고 내려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또다른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야 합니다. 도중에 한번이라도 실패하면 실패자의 낙인이 찍힙니다. 

 

몇일 전 비극적 사건을 알리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기사에서 의대생인 최모씨는 이별을 통보한 여친을 살해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제정신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의 마음에 엄청난 좌절감과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귀신의 세력이 그의 마음에 가득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기사가 특히 충격적인 것은 그가 2018년 수능 만점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도 넘지 못하던 에베레스트 정상을 젊은 나이에 가뿐하게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에베레스 정상을 오르는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사실 제가 그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만 잘하면 모든 잘못이 다 덮어지고 최고로 대우받는 분위기 가운데 자라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아는 우리 사회는 전국 어디를 가든 대체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귀신이 어떻게 들어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둑은 벽에 붙어 가스관이나 환기통을 통해 집에 들어옵니다. 이에 비해 귀신은 우리의 잘못된 가치관, 잘못된 생각을 타고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귀신은 어떤 일을 합니까? 마치 라디오가 공중의 주파수를 잡아 소리로 변환 및 증폭시키는 것처럼, 귀신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분노를 눈에 보이는 폭력으로 변환 및 증폭시키는 일을 합니다. 또 도둑이 주인을 밧줄로 묶어두고 집안 물건을 강탈하는 것처럼 귀신은 우리의 자아를 제어하고 삶의 소중한 것들을 강탈하여 갑니다.  

 

6-8절을 보십시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들린 청년은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하였습니다. 그는 괴로움 가운데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청년의 말은 그의 안에 있는 귀신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귀신이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9-13절을 보십시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은 청년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귀신의 정체와 속성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름은 한 사람의 존재와 인격을 대변합니다. 이름을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귀신은 “군대”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원문상 ‘레기온’으로 약 6천명으로 이루어진 로마 군단을 가리킵니다. 청년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의 정체는 수많은 귀신들로 이루어진 군단급 떼귀신이었습니다. 

 

귀신은 청년의 몸을 떠나는 대신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잠시 후 2천 마리나 되는 돼지떼에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돼지들이 바다에 투신하여 몰사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귀신이 얼마나 그 숫자가 많고 엄청난 세력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또 더러운 곳을 좋아하고, 생명을 해치기 원하는 귀신의 속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와 속성을 드러내셨을까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귀신은 그 정체와 속성이 사람들에게 드러날 때 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피아 게임 아시죠? 마피아 게임에서 누가 마피아인 것이 드러나면 그 게임은 끝납니다. 정체가 드러난 마피아는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적국에 잠입한 스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파이가 자기 역할을 하고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때입니다. 스파이라는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몇일 전 일어난 최모씨 사건도 우리 사회가 만약 그 배후에 귀신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육부 공무원들부터 학생들에게 공부 잘 하는 것도 좋지만 반드시 인성교육, 가치관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교회나가서 하나님 말씀배우는 것을 좋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귀신의 영향력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 가치관을 따라가면 여전히 귀신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것을 가늠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 온유와 절제, 사랑이 있습니까? 혹 누군가에 대한, 또 무엇인가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시끄럽지는 않습니까?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절제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대신 요구하는 마음, 미움이 가득합니까? 

 

그렇다면 크리스챤이라 하더라도 귀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입니다. 설령 귀신이 그 안에 들어오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귀신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귀신의 영향력 아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대책을 세우게 됩니다. 

 

대책은 무엇입니까? 제가 제안하는 것은 다른 무슨 일을 하기 전 먼저 줄 그으며 성경읽기, 또 말씀 암송입니다. 지난 주간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고린도전서 15장 전반부를 헬라어로 암송하였습니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그때 불안과 염려를 가져오는 귀신의 세력이 물러가고 부활의 소망과 기쁨이 충만하여졌습니다. 가을학기에는 우리 목자님들과 사모님들을 잘 설득하여, 아무리 하기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설득하여 히브리서 11장 믿음장과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암송대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 또 청년팀들이 성경읽기와 암송, 또 기도를 통해 마음에서 귀신의 세력이 물러가고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여지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물어보신 것은 하나님이 청년에게 주셨던 본래의 이름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내 안에 있는 그 귀신의 이름을 알 때, 그리고 그 귀신이 나갈 때 비로소 본래 자기 이름을 회복하게 됩니다. 

 

저의 집안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부 무교였습니다. 또 저의 부모님은 강한 샤머니즘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코뼈가 비뚤어진 관계로 코로 숨을 쉬지 못해 밤에 입을 벌리고 잤습니다. 그 결과 아래 턱뼈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턱이 뾰족해졌고 앞으로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저를 보고 세모, 문턱이라며 엄청 놀려댔습니다. 어떤 때는 아침 조회 전 단체로 떼창을 부르며 세모, 세모 합창을 하며 놀렸습니다. 이런 괴롭힘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7살 때 초등학교 들어간 저는 항상 나보다 1살 이상 많은 아이들에게 반항하다가 엄청 두들겨 맞았습니다. 저의 마음은 분노로 이글거렸습니다. 이 분노를 애꿎은 동생에게 폭발시켰습니다. 동생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구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분노한 어머니는 파리채로, 특히 동생을 매우 사랑하는 아버지는 가죽 혁띠로 저를 죽어라 팼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스트레스를 청년의 정욕으로 해소했습니다. 

 

석양이 지던 어느날 저녁 노을을 보며 저는 만약 지옥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구원의 확신대신 지옥의 확신이 들었습니다. 석양노을을 바라보며 저는 “하나님, 하나님이 만약 계시다면 저를 구원해 주세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드린지 얼마 후 국어 선생님이 갑자기 수업 시작 5분 동안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국어 선생님을 통해 들은 성경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거라사 광인 이야기였습니다. 거라사 광인 말씀을 듣는데 이 이야기가 뭔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사회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분노로 가득한 거라사 광인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너무도 조용하고 착해보이는 학생이었지만 속에는 이글거리는 분노로 가득한 나를, 항구 도시 목포에 살던 나를 예수님은 물건너고 바다건너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제가 느꼈던 그 마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거라사 청년같던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 나를 찾아오시고 내 이름을 불러주셨던 그 예수님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16세 소년이었던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난 후 저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분노하고 복수하라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도록 태어난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분노입니까? 두려움입니까? 정욕입니까? 세상의 성공입니까? 세상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입니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참된 이름을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4-17절을 보십시오.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님의 도움으로 청년은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옷도 입고 예수님 앞에 얌전히 앉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 지방 사람들은 크게 기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돼지 떼 몰사로 인한 피해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제가 찾아보니 요즘 돼지 한 마리가 시가로 50만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돼지 2천마리는 오늘날 화폐 가치로 10억입니다. 그들은 한 청년의 생명보다 10억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이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하셨습니다. 집에 머물면서 주께서 그를 위해 큰 일을 행하신 것과 그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가족과 그 지방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저자 마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여러 사건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건은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만 마가복음이 가장 상세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귀신들린 청년 한 사람을 만나주시기 위해,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광풍과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를 헤치고 이곳에 오신 예수님이, 본문의 귀신들린 청년처럼 헬라 문화권에 사는 로마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과거 본문의 거라사 청년처럼 헬라 문화의 영향력 아래 세상 죄로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사랑하사 지중해 바다를 건너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그들은 네로 황제의 박해를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유교 문화와 샤머니즘의 영향력 아래 고통하던 우리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여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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