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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마가복음 7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 마가복음 5:21-43

요절/ 마가복음 5:36 

 

예수께서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야이로라는 이름의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되었을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회당장은 회당 건물의 관리책임, 회당에서 진행되는 각종 회의, 교육, 예배 관련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러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와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도 예수님보다 많았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까요? 그것은 12살된 그의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는 딸을 매우 사랑합니다. 아들은 어떻게 보면 썰렁합니다. 생전 연락도 없다가 필요할 연락합니다. “, 오늘이 아빠 생일이었어?” 이럽니다. 반면 딸은 어떻습니까? 딸은 미리 준비한 예쁜 선물과 손글씨로 카드를 아빠에게 주며 말합니다. “아빠 생일 축하해.” 그리고 아빠를 안아줍니다. 

 

야이로는 이런 딸이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딸을 보며 야이로는 예수님께 달려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서 무릎꿇는 사람 하면 백화점에서 갑질하는 못된 VIP 고객을 떠올립니다. 혹은 골프치다가 손가락 욕을 기자회견을 열어 무릎꿇고 사죄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의 앞에서 무릎꿇는 것을 삶의 수치로 생각합니다. 절대로 그런 수치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꿇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꿇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복권 당첨을 기대하고 일주일에 , 어떤 사람은 매일 번씩 복권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마침내 복권에 당첨되면 수십억을 받을 있으니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된 삶이 망가지고 가족이 해체되고 불행을 겪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인생의 참된 복은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 앞에 나가 그분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게 되어 예수님 앞에 나가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건은 야이로에게 아픔이요,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보니 딸의 병과 죽음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나가 무릎을 꿇도록 인도하였습니다. 

 

Bob Ross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Happy little trees, happy little clouds라는 제목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에 그려진 나무들을 보면, 작은 구름들을 보면 정말 행복해지는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는 말하기를삶에 불행한 사고란 없다, 다만 행복한 작은 나무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No accidents, just happy little trees.)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여러 불행한 사건들은 자체만 보면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만약 사건이 나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든다면 사건은 나에게행복을 가져다준 작은 나무(happy little trees)” 것입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려 12년을 혈루증이란 병을 앓았습니다. 혈루증은 오늘날 자궁내막증입니다. 여성의 자궁에 염증이 생겨 피가 나는 증상입니다. 저는 잇몸이 약해서 때마다 잇몸 염증이 자주 생깁니다.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몸이 열이 나고 아픕니다. 여인도 자궁내 염증으로 인해 몸이 아팠을 것입니다. 

 

여인은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에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돈만 쓰고 병에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이 중해졌습니다. 사람이 병이 든다는 것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그녀는 질병의 감옥에 갇혀 삶의 자유와 행복을 잃고고통 가운데 무려 12년을 지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본문의 여인처럼 오랜 기간 질병으로 고통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아직은 젊고 건강하여 만성적인 병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는 고질병과 같은 내면문제, 죄문제가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시대 청년들은 고도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로 인해 깊은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톡톡 튀는 또래 젊은이들 가운데 소외되어 열등감, 비교의식, 인간관계에서 받는 여러 상처로 인해 마음에서 피를 철철 흘립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은 병으로 고통하던 어느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당시 율법에 의하면 본문의 여인처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대중 앞에 나오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성전 출입도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예수님 앞에 나올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자기를 만져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때 여인은 혼자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께 나아갈 없다면 몰래 숨어서 나가자. 만약 나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할 없다면 내가 예수님을 터치하자. 몸을 터치하면 예수님이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 예수님이 때문에 부정해지실 수도 있으니 옷자락만 만지자.’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즉시 그녀의 병이 나았습니다. 12년을 병으로 고통한 여인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눈에서 하염없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여인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주님과 우리를 연결시켜 준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마치 전선을 통해 전기가 내려오듯 믿음을 통해 주님의 임재와 능력이 우리의 삶에 나타납니다. 

 

휴대폰과 노트북에 wi-fi 비번을 입력하면 즉시 인터넷과 연결되듯 우리가 마음에 믿음의 생각을 , 믿음으로 기도할 , 믿음으로 행동할 - 믿음을 통해 주님과 내가 즉시로 연결이 됩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디서 구할 있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 10:17)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믿음은 말씀을 들을 생겨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은 주일 아침 자리에 모였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들을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기면 삶의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면의 병이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간증입니다. 저는 이따금 하나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문엘리야, 내가 너를 스탭으로, 말씀의 종으로 세웠는지 아니?”

모르겠습니다.” 

너는 학생 때부터 믿음이 약했잖아. 너는 믿음이 약해서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안돼. 너는 풀타임 목자가 되어 강단에 올라가 매주 메시지를 전해야 믿음이 생기니까 그래서 너를 말씀의 종으로 세웠어.” 

 

(진짜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듣는 것은 단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갖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금보다도 훨씬 귀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단련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순수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합니다. 나아가 영혼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도록 합니다. 

 

30-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자신에게서 병을 고치는 능력이 나간 것을 깨달으신 예수님은 누가 자기를 믿음으로 만졌는지 찾으셨습니다. 마침내 여인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도록, 건강한 삶을 살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여인이 부끄럽지만 자신이 체험한 것을 간증하도록 하셨을까요? 

 

첫째, 여인이 가진 믿음을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인물은 야이로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야이로의 믿음의 성장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죽어가는 딸을 살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을 나음받으리라 믿은 여인의 믿음을 배우도록 도우셨습니다. 

 

저도 체험적으로 여인들의 믿음, 사모님들의 믿음이 성경 속의 여인들처럼 믿음이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간증을 들어보면 기가막힌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멀리 것도 없이 동역자(아내) 간증을 듣다보면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됩니다. ‘, 저런 믿음이 있구나, 저렇게 믿음으로 하는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믿음을 받으시는구나.’ 보고 배웁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집에 오면 생각부터 하기보다 사모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믿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우리 청년팀도 간증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배울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여인으로 하여금 간증하도록 하신 것은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성이 맺힙니다. 예수님이 나의 이름을 아시고, 내가 예수님을 아는 관계성이 맺힙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괴롭게 하나이까

 

여인의 간증은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야이로도 여인의 간증을 들으며 믿음에 대해 크게 배우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는 딸을 생각할 은혜롭지만 여인의 간증을 빨리 끝내고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타들어가는 했습니다. 

 

그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이제 그만 선생님을 보내드리시는게 어떻겠습니까?” 말을 들은 야이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마치 심장이 멈출 같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끝이 없는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같았을 것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Don’t be afraid; just believe.” 

 

현대 의학의 눈으로 죽음은 누구도 돌이킬 없는 생명활동의 영구적인 중단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즉시 심장이 박동을 멈춥니다. 심장이 박동을 멈추면 뇌로 피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는 얼마 되지 않아 뇌세포가 죽기 시작합니다. 뇌가 죽으면 이른바 뇌사 상태가 됩니다. 이어 몸의 여러 장기들도 죽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세포가 죽고 부패 과정이 시작됩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이렇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Absolutely impossible 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경험을 통해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고 세상에서는 다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야이로는 예수님에 대한 모든 기대와 소망을 내려놓고 이제 예수님을 보내드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Don’t be afraid; just believe.”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죽음보다 강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합니다. 죽음은 인류를 괴롭히는 원수들 가장 강한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보다 강한 분이 되십니다. 

 

지난 비유 말씀에서 예수님은 강한 자의 집에 강한 자가 들어가 그를 결박하고 그의 소유물을 뺏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인류의 최고 원수요, 가장 강한 자의 소굴에 홀홀단신으로 쳐들어가 그를 결박하고 그의 소유물을 빼앗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죽음보다 강한 분이시라면 우리가 무서워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청년들은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습니다. 대입 준비를 하는 청년들은 과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있을까 두렵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청년들은 과연 내가 원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좋은 직장에 들어갈 있을까, 생각할 두렵습니다. 목자님들은 목자로서 은퇴가 멀지 않은데 캠퍼스 제자를 세우지 못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100 시대에 노후를 어떻게 보낼 있을까 생각할 무척 두렵습니다. 

 

종로7부는 올해 청년팀 12가정 세워주시도록, 가까운 시일 내에 후임 스탭 목자 세워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름 수양회에는 50 참석하여 양들이 예수님을 뜨겁게 만날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때로는 과연 있을까 생각이 들고 목자로서 삶이 별다른 열매 없이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제가 만약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크고 강하신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대입을 준비하는 우리 청년팀, 논문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팀, 직장 생활하는 청년팀, 우리 목자님들이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각자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야고보의 형제 요한 - 사람만 데리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통곡하는 사람들을 보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것이라 잔다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비웃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은 제자들, 아이의 부모와 함께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이는 아람어로소녀야, 일어나라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자 죽은 소녀가 눈을 뜨고 일어나 걸어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사건을 통해 야이로는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죽어가는 딸을 살리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대신 이미 죽어버린 딸을 살린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야이로 편에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딸이 죽기 직전 살려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딸이 죽기까지 일부러 지체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야이로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배웁니다. 우리는 때로 어린 아이와 같아서 힘들지 않게, 편하게 뭔가를 얻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해병대 조교처럼우리를 때로 빡세게 훈련하십니다. 훈련을 통해 일당 백의 해병대원으로 키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훈련을 받을 당시에는 훈련이 죽을 것처럼 힘들고  훈련을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은 자는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이 쓰실만한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아까 삶의 고난이 뭐라고 했죠? 

 

“No accidents, Just happy little trees.”

 

그렇습니다. 삶의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 삶에 심으시는 그루의 나무입니다. 나무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하심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네로 황제의 박해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들이 믿고 신앙하는 예수님은 죽음보다 크고 강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할 박해를 이기고 승리할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있습니다. 세상이 심는 모든 두려움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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