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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마가복음 9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말씀/ 마가복음 7:1-37

요절/ 마가복음 7:20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러분은 어떤 인생이 가장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보실 때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 - 여러분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죠?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늘 배가 고픈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었습니다. 본래 구약 성경에 의하면 제사장이 제사드리기 전 손과 발을 씻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출 30:19~21)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이것이 확대 적용되어 제사장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이 손을 씻어야 했고 성전에 갈 때 뿐아니라 식사하기 전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하필 이 모습이 종교 지도자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흥분한 그들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습니까?” 

 

예수님 당시 율법은 성경으로 기록된 율법(오늘날 구약성경)과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전 율법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언급한 장로들의 전통이 바로 이 구전 율법(oral tradition)입니다. 구전 율법이 왜 생겨났느냐면 예를 들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말씀의 경우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일이 아닌가 세부 규정이 필요하겠죠. 군대에서도 주말 휴무인 경우 슬리퍼만 신고 영내를 돌아다녀도 되는지 속옷 차림으로 연병장을 막 돌아다녀도 되는지 그런 세부 규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한편 이런 구전 율법을 미쉬나라고 불렀습니다. 올해 ‘변순복’이라는 분이 이 미쉬나를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총 6권이고 가격은 10% 할인하여 256,500원입니다.) 구전 율법이 왜 이렇게 책으로 기록되었는가 - 그것은 로마와 항전과정에서 6권 분량의 미쉬나를 통째로 외우고 있는 국보급 랍비들 중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에 기록을 통한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고 구전 율법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미쉬나를 또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랍비들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 토론을 ‘게마라’라고 합니다. 이 ‘게마라’라는 토론집에 보면 종종 랍비들이 자신의 미쉬나 해석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나 잠언 등을 집어넣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탈무드라고 알고 있는 것이 이 게마라 안에 포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은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 딱 하나만 소개합니다. “악마가 바빠서 사람을 찾아다닐 수 없을 때, 술을 대신 보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탈무드는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친 것입니다. 약 AD500년경 탈무드가 발간되었는게 그 분량이 오늘날 일반적인 책 기준으로 무려 63권 분량에 해당합니다. 

 

6-13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 곧 탈무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이 사람의 전통, 곧 탈무드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로 드신 것이 고르반 전통입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고르반 전통을 이용해 부모님을 섬기는 데 써야 할 돈을 하나님께 드렸다 선포하고 부모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고르반 전통에 부칙으로 기록된 내용을 이용해 돈 50세겔을 지불하고 고르반 선언을 취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짜피 돌아가실 부모님께 들어갈 거액의 병원비를 아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당시 유대인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7-23절을 보십시오.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의 포인트는 근본적으로 예법 자체가 사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예법이 있습니다. 서양 식사 예법의 경우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각각 식사 중일 때, 식사하다가 잠간 자리를 비울 때, 식사를 끝냈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놓는 위치가 다릅니다. 생선을 먹을 때에도 예법이 있습니다. 절대로 생선을 뒤로 뒤집으면 안됩니다. 우선 절반을 먹고 뼈를 들어낸 후 나머지를 먹어야 합니다.  

 

동양에도 이러한 예법이 있습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여름수양회 기간 두 애들을 장모님께 돌봐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4박 5일의 여름수양회가 끝나고 장모님께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이들을 본 저는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에스라, 다니엘’ 하면서 달려가 아이들을 번쩍 들어 안았습니다. 이때 장모님이 저를 따끔하게 야단치셨습니다. “장모님, 그동안 애들 보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이래, 장모님께 먼저 인사를 해야지, 어른이 되가지고 예의도 없이 아-들 인사를 먼저 하느냐고 따끔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때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내가 줄줄이 남동생들 돌보느라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어머니와 소 뜯기고 농사일 하느라 18세에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신 아버지 밑에서, 먹고 사느라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사신 부모님 밑에서 미처 예법 교육을 받지 못했구나’ 깨달았습니다. 

 

장모님이 늘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맛나고 좋은 음식이 있으면, 집안의 어른한테 먼저 드십시오 - 하고 드려야지, 아-들 이쁘다고, 아-들 먼저 주면 되나”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식사할 때 가장이 먼저 밥상 한 가운데 있는 국에 숟가락을 넣어 “어, 시원하다.” 이래 말을 해야 나머지 식구들이 숟가락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장이 “뭐하는교? 언능 밥묵으라.” 말합니다. 사실은 다들 가장이 먼저 숟가락을 드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케케묵은 이런 예법을 오늘날에도 지켜야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법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삶의 질서와 가치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음식을 먹을 때 깨끗한 풀을 되새김질하여 먹는 소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온갖 더러운 오물(예를 들어 인분을 먹는 제주도의 흑돼지)을 먹는 돼지고기는 부정한 것이니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늘있는 생선을 먹어도 되지만 비늘없는 미꾸라지나 정력에 좋다고 해서 지네탕이나 오리피 - 이런 것을 막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음식에도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있다고 구별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를 통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깨끗하고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는 깨끗한 것도 있지만 절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 사람의 인분처럼, 썩어가는 시체처럼 - 냄새나고 더러운 것도 있습니다. 따라 해도 되는 깨끗한 행동이 있지만, 절대로 따라 해서는 안되는 가증스럽고 더러운 행동도 있습니다.

 

레위기 18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친남매가 성적 관계를 맺으면 안된다, 아버지와 딸, 할아버지와 손녀가 성적 관계를 맺으면 안된다, 짐승과 수간하면 안된다 - 이런 유사한 내용이 길게 나옵니다. 거룩한 성경에 상상만 해도 구역질나는 이런 내용이 수록되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이것은 레위기 18장에 기록된 이런 내용이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가나안 사회에 만연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고 더럽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상숭배와 성적 방종입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우상숭배합니다. 2003년 중국에서 가짜 분유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아들이 먹는 분유를 가짜 성분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분유를 장기간 먹은 아이들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대두증’이 나타나고 심지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중국인들 정말 왜 저러는가? 인구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전 보도된 한 뉴스기사를 보면 (https://www.chosun.com/opinion/2024/05/14/7IWOIOFA5VC7JPQKOKMQTXG5U4/) ‘퍼듀 파마’라는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 판매를 위해 언론을 교묘하게 속였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옥시콘틴 10㎎과 160㎎을 복용했을때 실제 몸속 최고 농도 차이는 12배에 달했지만, 그래프상으로는 2배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으로 교묘히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Y축의 농도 숫자를 ‘10, 20, 30′으로 하지 않고 ‘1, 10, 100′으로 해 착시를 일으킨 것입니다. 

 

언론은 이를 꼼꼼하게 보지 않고 넘어갔고, 마침내 미 FDA는 옥시콘틴을 승인했습니다. 이에 기존의 마약성 진통제 용량이 5~10㎎였다면, 옥시콘틴은 무려 160㎎ 고용량까지 출시되었고 옥시콘틴을 복용한 이들은 급격한 혈중 농도 상승으로 마치 마약을 한 것 같은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 진통제를 복용한 미국인들은 마약 중독이 되었고 옥시콘틴과 유사한 펜타닌 계열 마약 중독자가 되는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지금도 미국 샌프란스시코, 뉴욕 등지에는 이 펜타닐 마약에 중독되어 허리가 꺾이고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온 시내에 널렸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맨 처음 옥시콘틴을 허가해준 FDA 검시관 두 명이 FDA를 떠난 후 제약 회사 퍼듀 파마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FDA가 옥시콘틴의 안전성 검사를 위해 10명의 전문가를 불러 자문위원회를 열었는데 그중 8명이 퍼듀 파마의 대변인이거나 퍼듀 파마로부터 강연료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FDA를 비롯한 자문 위원들은 명백히 옥시콘틴의 커다란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위해 수많은 미국 사람들을 마약 중독자로 내모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명보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는 이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 사상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 우상숭배가 하나님 보실 때 참으로 더럽고 역겨운 것입니다. 우리가 방안에 바퀴벌레가 지나가면 너무 더럽고 발로 그냥 확 밟아버리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은 돈을 우상숭배하는 인간들, 돈때문에 생명을 해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간들을 역겹게 여기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역겨운 것은 성적 방종입니다. 하나님은 성을 결혼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만 허락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고리타분한 옛 유산으로 여깁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성적 방종을 일삼습니다. 사귀기 전에 먼저 속궁합을 확인해야 한다며 잠부터 잡니다. 

 

오래 전 한 청년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자기는 결혼 전 최소한 5명을 사귄 후 6번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지금 사귀는 여자는 몇 번째냐고 하니까 두번째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결혼할 생각은 아니겠네요.” 물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자 딱 두명 만나고 결혼하면 너무 아쉽고 손해라고 했습니다. 당시(거의 20여년 전 일입니다) 저는 너무 순진해서 “아,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면 선은 넘지 않았겠네요.” 물었습니다. 그는 당혹해하며 답변을 얼버무렸습니다. 놀란 저는 혹시 지금 사귀는 여자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본인이 결혼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여친은 자기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저는 그때 받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 요즘 청년들이 이렇구나’ 놀랐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청년 사역자였던 제가 참 순진했다 생각이 됩니다. 요즘 청년들의 성적 방종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오늘날 결혼한 사람들이 붙들고 있는 지혜의 말씀, 잠언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람을 피우더라도 배우자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적 방종을 참으로 더럽고 역겨운 것으로 여기십니다. 바퀴벌레를 보고 발로 확 밟아버리고 싶은 것처럼 성적 방종을 일삼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옥불에 당장 던져버리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죄인일지라도 회개하여 다시 깨끗하게 되기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깨끗하게 될 수 있습니까?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더러움을 진실되게 자백하고 주님, 이 죄인을 깨끗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복음 역사를 잘 섬긴 동료 스탭 목자님, 또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데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들을 비교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세상의 여자들을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집 뒤에 있는 배봉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이 더러운 마음을 마치 형사에게 죄를 술술 부는 범인처럼 육하원칙에 기반하여 정말 진솔하게, 또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때 저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더럽다고 구역질난다고 목회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내 앞에서 꺼지라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나의 더러운 죄를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다시 깨끗하게 했으니 목회를 계속 해도 된다고, 거룩한 나의 말씀을 단상에게 계속해서 전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이미 거룩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함과 깨끗함을 입는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24-30절은 그 유명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스토리입니다. 종교 지도자들과의 충돌 이후 예수님은 두로라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오늘날 ‘레바논’입니다. 레바논 사람들은 페니키아 족속입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지중해 바다를 중심으로 무역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전파한 가나안 문자가 오늘날 영어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또 이들이 아프리카 북부에 세운 나라가 그 유명한 카르타고이며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포에니 전쟁, 한니발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한편 바알 숭배로 수많은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선지자를 죽인 희대의 악녀 이세벨이 바로 이 두로 출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두로 사람들을 더러운 이방인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족속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곳으로 가셨을까요? 아마도 종교 지도자들과의 충돌을 피해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때 한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수로보니게(시리아-페니키아)라는 이름 자체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페니키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딸이 귀신들렸으니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떤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사람이 좋은 음식이 있으면 자녀에게 주지 개한테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여인을 개취급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완전히 마음이 상하고 삐쳐서 다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몇몇 분들에게 “그런식으로 신앙생활할거면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반응할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전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안나올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안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본문의 여자는 말합니다. “주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여자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온갖 예법을 다 알고 있는 궁중의 높은 신분의 양반관리, 이에 비해 예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한 상민 - 두 사람 중 상민이 인간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온갖 율법을 알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에 비해 율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방 여인이 주님께 나아갈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이 조금만 기도응답 잘 안해주시고 나를 잘 돌봐주지 않으시는 것 같으면 너무나 쉽게 삐칩니다. 기도도 안하고 배째라 하고 영적으로 드러누워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까? 겸손한 마음,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매정하게 대하시는 것 같아도 그 안에는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가득하신 좋으신 하나님(God is good),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31-37절에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쳐주십니다. 사람이 귀를 먹으면 자동으로 말도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자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오늘말 많은 청년들이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해 답답해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본인도 답답하고 상대방도 답답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런 청년들을 보시며 탄식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에바다(열리라)” 하십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생각입니다. 간음과 탐욕입니다. 우리가 이 악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아가 진실하게 자백하고 주의 보혈로 깨끗함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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